“몰래 통화 녹음파일 증거더라도…사회통념 허용한도內 사용 가능”

#. 아내가 남편의 휴대전화에 자동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몰래 설치했다. 불륜을 의심해서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녹음된 파일에 남편의 불법 ‘금권 선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녹음됐다. 수사기관은 이를 우연히 발견했다. 형사 재판에서 이 녹음파일을 증거로 쓸 수 있을까.

대법원은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 녹음 경위와 내용에 비췄을 때 사생활을 침해한 정도가 크다면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우자 몰래 휴대전화에 자동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얻게 된 녹음파일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수산업협동조합 선거운동원 A씨 등의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9년 제2회 전국 수협조합장 선거에서 금품이 살포되는 범행에 연루됐다.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인들에게 현금을 제공하거나, 선거운동기간 전에 지지를 호소했다. 실제 당선이 된 김용실 당시 부산시수협조합장은 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A씨도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급심(1·2심)은 A씨 등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A씨 휴대전화에 녹음된 그와 배우자 사이의 통화 녹음파일을 증거로 인정했다. 해당 녹음 파일은 아내가 A씨 몰래 휴대전화에 자동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녹음됐는데, A씨와 A씨 아내의 통화도 녹음됐다. 여기엔 이번 선거범죄를 입증할 내용이 다수 있었다.

A씨 등은 대법원에 상고하며 “해당 녹음파일은 사인(私人)에 의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상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유죄 인정을 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도 “증거수집 절차가 개인의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났다면 곧바로 공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단 “그러한 한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형사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며 이번 사건에선 한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이번 범행은 돈 선거를 조장하는 중대범죄에 해당하는데, 선거범죄는 대체로 계획적·조직적 공모 아래 은밀하게 이뤄지므로 객관적 증거인 통화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의 배우자가 통화의 일방 당사자로 직접 통화내용을 청취했고, 제3자에게 유출하지 않았으며, 수사기관도 적법하게 압수된 휴대전화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화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문제된 사안에서 녹음 경위, 내용 등에 비췄을 때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최초로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다만 이번 사건에선 사생활이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안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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