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1. 가정폭력으로 징역 8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A씨는 출소 이후에도 전 배우자인 B씨에게 전화·문자를 시도하는 등 스토킹 행위를 지속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A씨를 스토킹 혐의로 입건하고 피해자 B씨에 대해 민간경호 지원을 시작했다. 어느날 경호를 받으며 일상생활을 해 오던 B씨에게 심야 시간 술 취한 상태의 A씨가 접근했다. B씨를 밀착 경호하던 민간 경호원은 A씨를 제지했고, 그사이 B씨는 112에 신고했다. A씨는 욕설을 퍼붓고 도주했지만 곧바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의 주거지 인근에서 체포됐다. 결국 B씨는 구속됐다.
#2. 장기간의 알코올 중독 입원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앞두고 있던 C씨는 입원 전에도 전 배우자를 찾아와 행패를 부려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C씨가 퇴원하면 피해자를 또 찾아가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민간경호를 실시했다. 예상대로 C씨는 만취 상태로 전 배우자 D씨 식당을 찾아왔고, 또 다시 112에 신고한 민간 경호원에 의해 현행범 체포됐다. C씨는 잠정조치 4호(유치) 조치를 받고 피해자와 격리됐다.
경찰청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서울과 인천, 경기남부·경기북부 경찰청에서 총 98명의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민간경호를 지원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청은 지난해부터 스토킹 및 가정폭력 등 추가 피해 우려가 높은 범죄피해자에게 민간경호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범 운영해오고 있다.
민간경호는 경찰 자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상 위험도가 ‘매우 높음’에 해당하거나, 가해자 출소·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추가 피해 위험성이 특히 높다고 판단되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시도청장의 승인을 거쳐 결정됐다.
경호는 경찰청과 계약한 민간경비업체 소속 경호원 2인이 조를 이뤄 하루 10시간, 1회 14일 이내를 기준으로 피해자를 밀착 경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필요시 1회 14일을 연장할 수 있고, 경호 시간과 방식은 피해자 상황과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했다고 경찰청은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민간경호 중 또는 경호기간이 종료된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례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시범사업 효과를 자평했다. 그는 “민간경호 중 피해자에게 접근한 가해자를 경호원이 즉시 제지하고 경찰에 신고해 검거한 사례가 총 5건 있었다. 이 중 구속되거나 유치된 경우가 4건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민간경호 지원 외에도 상황에 따라 스마트워치·지능형 폐쇄회로(CC)TV 등을 함께 제공했다. 또, 가해자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민간경호 중 가해자 구속이 24건, 잠정조치 4호(유치)가 6건 이뤄졌다.
시범운영 기간 동안 총 98명의 범죄피해자가 민간경호를 지원받은 가운데, 지역별로는 서울청 48건, 인천청 7건, 경기남부청 35건, 경기북부청 8건이고, 사건 유형별로는 스토킹 55건, 가정폭력 11건, 교제폭력 9건, 폭행·협박 9건, 성폭력 7건 등이었다. 민간경호 대상자는 대부분이 여성(91명, 93%)으로, 가해자와의 관계는 전 연인 또는 전·현 부부 사이인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민간경호 종료 후 피해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87명) 전원이 민간경호 지원 내용에 대해 만족했고, 민간경호 중 가해자 보복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느꼈다고 응답했다고 경찰청은 밝혔다.
아울러 민간경호 지원을 담당한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173명 응답)에서도 다수의 경찰관이 민간경호가 피해자의 불안감 해소 및 가해자의 추가범행 저지에 효과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올해도 서울·인천·경기 지역 고위험 범죄피해자를 대상으로 민간경호 지원 사업을 지속 운영해 나가고, 2025년에는 전국으로 확대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예산 증액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번 민간경호 지원 사업은 경찰이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해 민간의 전문성과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한 치안서비스 공동 생산의 모범적인 사례”라며 “앞으로도 민·경협력과 과학치안을 통해 범죄피해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