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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실거주 임차인이 법인의 대표이사라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계약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회사가 복지 차원에서 직원에게 숙소를 제공한 경우와 대표이사·사내이사 등이 법인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경우를 엄격히 구분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건물인도 사건을 심리하며 이같은 법리를 최초로 판시했다. 대법원은 부동산 임대 회사가 중소기업 법인을 상대로 “임대차 계약이 끝났으니 건물을 인도하라”며 낸 소송에서 부동산 임대업 회사 측 승소로 판결한 원심(2심)을 확정했다.
부동산 임대업 회사인 A사는 2019년 12월,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 대해 중소기업 법인을 임차인으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보증금 2억원에 임대료 월 1500만원, 계약기간 2년 조건이었다. 해당 아파트는 법인의 대표이사가 배우자와 함께 신혼집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분쟁은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에 발생했다. A사는 임차인(중소기업 법인)의 계약 갱신청구권 행사를 거부했다. 갱신청구권은 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1회 갱신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임대인은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중소기업 법인이 소속 '직원'의 주거용으로 주택을 임대차했을 때도 해당 조항에 따라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A사는 중소기업 법인의 갱신청구권 행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A사는 “부동산의 실제 거주자가 법인의 대표이사 직위에 있었던 사람”이라며 “법인의 직원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심에선 A사가 패소했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9단독 김선희 판사는 갱신청구권 행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임대차보호법상 ‘직원’은 일정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써 임원을 제외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임원이라는 이유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부장 박성규)는 반대로 갱신청구권 행사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직원’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임대차보호법상 그 취지가 주택을 소유할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중소기업이 직원들에게 주거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취지를 고려하면, 직원에 법인 소속 근로자들 외에 대표이사 등 임원들까지 포함되는 것이라고 해석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대해 수긍했다.
대법원은 “임대차보호법상 직원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또는 사내이사로 등기된 사람을 제외하는 것으로 보는 게 법체계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중소기업기본법 및 시행령에도 ‘임원’과 ‘직원’을 구별해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아울러 대법원은 “법인 명의의 주거용 임대차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땐 임원을 제외한 직원이 해당 주택을 인도받아 주민등록을 마치고 실거주하고 있다면 충분하다”며 “그밖에 업무관련성, 임대료의 액수, (회사와 거주지의) 지리적 근접성 등 다른 사정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직원 및 주거용 임차의 의미에 관해 최초로 명시적으로 판시한 판결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중소기업 법인이 소속 직원 거주를 위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경우 갱신청구권 행사가 가능한지 여부 등에 대해 기준을 제공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