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과일을 고르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지난 9일 오후 2시께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시장. 시장 골목을 따라 딸기와 사과, 귤 등이 가득 담긴 상자와 바구니가 놓여있지만 정작 관심을 갖고 구매하는 시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예쁘고 맛있는 것만 모아뒀다’ ‘귤 좀 보고 가세요’ 등 상인의 말에 거리에 나와있는 과일 상자를 한 번 흘겨보고 가격에 놀라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왜 이렇게 비싸냐”며 투덜거리는 시민도 있었다.
상인 한모(67) 씨는 “고작 몇 주 사이에도 과일 값이 오르니까 손님들이 확 줄어 하루 1~2명에 그치는 날도 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설 명절을 한 달 앞두고 딸기와 사과, 귤 등 과일값 상승으로 상인과 시민 모두 울상을 짓고 있다. 상인들 사이에선 ‘겨울 장사 망했다’는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선 ‘과일 먹기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과일값 상승은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9일 기준 후지 사과 10개의 평균 소매가격은 2만9476원으로 1년 전(2만2504원)보다 6972원 올랐다. 신고 배 10개의 평균 소매가격 역시 3만3381원으로 지난해 대비 7143원 올랐으며, 딸기는 7일 기준 100g 평균 소매가격 2139원으로 1년 전(1979원)과 평년(1762원)보다 각 8%, 21% 상승했다.
특히 최근에는 겨울철 대표 과일인 귤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제주 감귤출하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제주 노지감귤 5㎏당 도매가격은 평균 1만4000원으로 뛰었는데, 이는 감귤 도매가격 조사가 시작된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8000~1만 원 수준이던 지난해 1월 귤값보다 약 50% 급등했다. 9일 기준 감귤 소매가격은 10개에 4333원으로 지난달(3557원) 대비 21.81%, 1년 전(3327원) 대비 30.23% 비싸졌다.
겨울철 대표 과일인 귤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제주 도매가격은 조사가 시작된 1997년 이후 가장 높다. 사과, 딸기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귤을 찾는 ‘대체 수요’가 증가해서다. 안효정 기자. |
서울 은평구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A씨는 다른 가게들에 비해 귤 판매가를 적게 올렸음에도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귤 5㎏ 가격을 지난달보다 6000원 올려 현재 2만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A씨는 “도매가 상승분을 반영해 정말 어쩔 수 없이 귤값을 올린 것이다. 솔직히 더 올리고 싶지만 그러면 단골 손님까지 완전히 끊길까봐 나름 조절했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올해 귤값이 이례적으로 비싸진 원인은 사과와 딸기 등의 ‘대체 수요’가 늘어난 데 있다. 사과와 딸기 등의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귤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는 지난해 여름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가 나타나면서 사과와 딸기 등의 과일 작황이 부진했던 탓이다. 통계청이 지난 2023년 12월 22일 발표한 생산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t으로 전년(56만6041t)과 비교해 30.3% 감소했다. 이는 2011년 37만9541t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생산량이다.
소비자들의 과일값 불만도 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인모(34) 씨는 “남편이 귤을 좋아해서 겨울만 되면 집에 귤 떨어질 날 없도록 쌓아두고 먹곤 했었다. 이젠 귤도 ‘금귤’이라 그렇게 못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취생 이모(25) 씨는 “이제 자취생에게 과일은 사치다. 누가 선물해주지 않는 이상 비싸서 사지 못할 것 같다”라며 “정말 먹고 싶을 때나 냉동 과일이나 편의점에서 ‘하루 컵 과일’ 정도 사먹을 것 같다”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과일값 잡기에 나섰다.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수입 과일 21종의 관세를 깎거나 면제해 주기로 했으며, 총 1351억 원 규모의 관세를 지원해 올해 상반기(1∼6월)에만 총 30만t의 과일을 들여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