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은 나뭇잎에 쓸 정도로 짧지만, 재치와 감동이 가득해요. 짧은 글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응축하죠.”
원고지 10매 내외, 글자수로 치면 5000자 안팎.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가 도래하며 짧아진 이 소설들은 ‘손바닥소설’, ‘엽편 소설’이라고 부른다. 영미권에서 부르는 이름은 ‘쇼트 쇼트 스토리’.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의 등장이 또 다른 예술세계를 사는 음악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다.
‘엽편소설’을 적잖게 쓴 소설가 김연수를 좋아하고, 그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가장 최근에 읽은 책으로 꼽는 피아니스트 김준형(27·사진)이다. 올해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그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60분이 조금 넘는 시간에 나의 이야기를 담는 연주의 과정이 글짓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금호아트홀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되면, 일 년동안 총 네 번의 무대에 오른다. 연주자 스스로 모든 공연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방향성을 잡는다. 음악가는 이 시간을 통해 미처 알지 못한 자신을 탐색하며, 성실한 배움과 성장의 시간을 갖는다. 그는 “나를 알고 있는 관객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온전히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공연을 ‘엽편소설’이라는 주제로 엮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스로 음악가로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어떤 피아니스트인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이 큰 시기에 상주음악가 제안을 받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1년간 이어질 그의 무대는 다채롭다. 11일 신년음악회를 통해 클래식 음악계의 3B인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연주한 뒤, ‘아름다운 5월에’(5월 9일), ‘풍경산책’(8월 22일), ‘종을 향하여’(11월 14일) 등의 제목으로 관객과 만난다. 피아노 독주회부터 이중주, 삼중주 무대를 구성했다. 레퍼토리는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여섯 명의 작곡가 위주로 선택했다.
김준형은 보통의 피아니스트와 달리 다소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의 누나는 피아니스트 김경민이다. 김준형은 “어릴 때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잘 못했고, 컴퓨터 게임도 30분이면 싫증을 냈는데 피아노 앞에서는 계속 앉아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주목은 빨랐다. 2012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후, 서울국제음악제 우승(2021년)과 독일 뮌헨 ARD 국제 음악 콩쿠르 준우승(2022년)를 거머쥐며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국제음악제 콩쿠르에서 아비람 라이케르트 심사위원이 제게 연주는 다 좋은데, 약간은 너드(Nerd, 괴짜) 같다는 평을 해주셨어요. 너드라는 말엔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찌질하고, 좋게 말하면 모범생 같다는 거죠. 제긴 오타쿠 기질이 확실히 있고, 이런 점이 음악을 할 때도 도움이 돼요.”
한동안 무대에 오르면 긴장감과 울렁증도 적지 않았다. 꽤 오래 이어진 무대 공포증은 우주를 소재로 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우주 유튜브를 집중해 보기 시작했다”며 “광활한 우주에 비해 한없이 작은 이 무대에서 뭘 이렇게 긴장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무대 위의 긴장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김준형은 고교 1학년 때 독일로 유학를 떠난 뒤, 10년 넘게 뮌헨에 살고 있다. 뮌헨 국립음대에서 피아노로 학사, 석사까지 마쳤으나 현대음악 전공으로 다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혼자 연습하고 혼자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때때로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피폐해질 때가 많다”며 “현대음악 과정을 통해 앙상블에 속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음악적인 이해와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올 한 해 목표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외면했던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며 스스로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과 예술은 끝이 없지만, 끝을 향하는 여정이라 생각해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닌 여운이 남는 연주를 좋은 연주라고 생각하고, 그런 연주를 하고 싶어요. 올해 상주음악가로의 활동이 끝날 때에는 저의 못생긴 면조차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