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의 고규영(오른쪽) 단장과 연구팀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
국내 연구진이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뇌척수액의 배출경로를 새롭게 찾아냈다.
11일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따르면 IBS 혈관연구단의 고규영 단장(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 연구팀은 뇌척수액의 주요 배출 통로가 코 뒤쪽에 있는 비인두(구강과 비강을 후두와 연결하는 인두의 상단 부분) 점막에 넓게 분포하는 림프관망이라는 것을 새롭게 밝혀냈다. 또 림프관망과 연결된 목 림프관을 발견하고, 이를 수축·이완시켜 뇌척수액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뇌 속 노폐물을 원활히 청소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IBS 혈관연구단은 2019년 뇌 후방부위 뇌척수액이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을 통해 목 부위 안쪽 림프절로 배출되고, 노화에 따라 림프관이 퇴화하면 뇌척수액 배출 기능이 저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뇌의 앞쪽과 중간 부위 뇌척수액 배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에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뇌의 앞쪽과 중간 부위 뇌척수액이 비인두 점막 림프관망에 모인 뒤 목 림프관을 지나 목 림프절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배출됨을 규명했다.
형광 표지자 발현 생쥐의 비인두 림프관망을 조직 투명화 과정을 거친 후 3차원으로 재구성한 이미지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
연구팀은 림프관에 선택적으로 형광 표지자를 발현하는 생쥐 모델과 생체 내 이미징 기술 등 첨단 시각화 기술을 활용해 뇌척수액 배출 경로를 시각화했다. 그 결과 비인두에서 발견된 림프관들이 서로 정교하게 연결된 림프관망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뇌의 안쪽과 바깥쪽 림프관을 연결하여 뇌척수액을 배출하는 ‘허브(Hub)’ 역할을 하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노화된 생쥐의 비인두 림프관망은 심하게 변형돼 뇌척수액의 배출이 원활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노화된 생쥐에서 목 림프관에는 큰 변형이 없었다는 것이다. 목 림프관은 둥근 평활근 세포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일정한 간격으로 판막들이 분포돼 있어 뇌척수액이 뇌 안에서 밖으로 잘 흐르도록 돼 있었다. 나아가 연구팀은 평활근 세포 조절 약물로 목 림프관의 수축과 이완을 유도할 수 있으며, 이때 뇌척수액의 배출을 원활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뇌 외부에서 뇌척수액의 배출을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이다.
고 단장은 “이번 연구로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비인두 림프관망의 기능과 역할을 규명한 것은 물론, 뇌척수액의 배출을 뇌 외부에서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며 “향후 치매를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날 세계 최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온라인 게재됐다. 구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