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즘 역주행하는 말이 나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정의 목소리가 언론계의 피할수 없는 숙명(宿命) 처럼 다가온다. 바로 ‘언론통폐합’이다. 일부 기자들은 숙청해야한다고 격한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허문도의 ‘언론통폐합’하고는 결이 다르다. 기레기기자, 일부 1인미디어 기자의 일탈, 보도자료만 베끼는 기자(?) 등을 언론 환경에서 쫓아내야한다는 목소리다. 경기도에만 3000여개의 등록 언론사가 있다. 기자회견장에 가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질문의 질이나 수준은 옆에 있는 기자들의 얼굴마저 붉히게 할 정도다. 또 왜 이렇게 설쳐대는지 한심하다. 영화 서울의 봄이 나오면서 ‘제2의 허문도’가 나와야한다는 말이 기자들 사이에서 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보도지침을 만들고 언론장악을 시도한 고(故) 허문도(2016년 3월5일 사망)가 나타나 듣보잡(?) 기자를 없애야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왜 나왔을까.
#2.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언론계는 ‘기나긴 겨울’이었다. 영화 ‘서울의 봄’이 1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가능케 했던 언론 장악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때와 다른 행태가 언론계에 성행한다.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기사를 쓰지도 못하면서 영업에 치중하는 소위 ‘영업용 기자’가 대폭 늘어났다. 당시 보안사에서 작성한 ‘K-공작계획’ 문건을 보면 신군부는 ‘오도된 민주화 여론을 언론계를 통해 안정세로 전환’을 목표로 했다. 신군부는 ‘서울의 봄’을 막기 위한 도구로 언론을 철저히 이용했다. 신군부는 보안사와 언론사주 및 언론사 간부 면담을 추진했고, 당시 언론반에서 작성한 ‘사령관님 언론인 면담 반응 보고’ 내용 일부가 위와 같았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은 언론을 무서워했다. 박정희 사망 다음 날인 1979년 10월27일 전국 계엄령 선포 이후 1981년 1월25일 계엄령 해제까지 1년3개월간 계엄사령부는 보도처 산하에 보도 검열과를 설치하고 총 108만3696건의 신문 방송 통신 잡지 기사를 사전 검열했다. 1980년 4월 ‘서울의 봄’ 시기 검열 건수가 가장 많았다. 전두환은 ‘보도처 위반 시 폐간’이라 경고했다. 이때만해도 기자는 기자답고, 언론사는 언론사 다웠다. 명분있는 전투(?)도 벌였다. 사적이 아닌 공적인 명분이라는 점을 우선 분명하고 하고싶다.
#3.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1~2월 보안사에 정보처를 복원하고 2월1일부터 정보처 내 언론업무를 담당하는 언론계를 두고 언론반을 가동했다. 언론반에선 언론사 간부 성향을 파악하고 요원들은 언론 동향을 파악하고 언론 논조까지 분석했다. 이 같은 내용의 동향 보고서는 언론인 강제 해직에 참고자료로 활용됐다. 정부의 엠바고나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을 경우엔 안기부로 연행해 고문했다. 영장 없는 불법 연행도 수없이 반복됐다. 보도지침 위반에 대한 보복을 넘어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수많은 언론은 언론의 봄을 위해 반항하다 안기부에 연행됐다. 우리 선배들은 이런 고난의 길을 걸어 언론자유 환경을 이렇게 만들어줬다. 그러면 우리는 선배들의 바램대로 기사를 쓰고 있는지 자문해봐야한다. 살아계신다고 해도 볼 낯이 없다.
#3.한국기자협회 30년사를 보면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사회정화’ 명목으로 언론사 통폐합에 나섰다. 전국 64개 언론사가 통폐합되며 18개로 줄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인 1000여명 이상이 강제 해고됐다. 지역지의 경우 1도1사 원칙으로 통폐합 또는 페간됐다. 같은 해 주간지와 월간지 등 172종의 정기간행물을 폐간시켰다.
#4. 허문도 생전에 그와 안산에서 만난적이 있다. 그에게 언론통폐합 당위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언론통폐합을 지적하는 기자에게 절대 굽히지않았다. 이때 허문도는 미래를 예견하는 말을 나에게 건넸다. “앞으로 우후죽순 소수 언론사(지금의 1인미디어)가 늘어나면서 폐해가 심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어 갑론을박을 한참동안 했다.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사망했다는 부고를 봤을 뿐이다.
#5. 허문도 예언이 100%가 아니더라도 그의 예견은 맞아 떨어지고있다. 행태만 바뀌어져 있을뿐이다. 기자 한 건도 쓸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1인미디어를 만든다. 일부 중앙지 주재기자중에도 창의적인 기사를 쓸 수 없는 기사도 있다. 유명한 기자가 1인미디어를 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제대로 된 기자교육조차 받지 못한 무늬만 기자가 판치고있다. 이들의 갑질은 하늘을 찌른다. 주 타겟은 광고다. 1인미디어는 수익의 전부를 가져간다. 언론사가 자기소유이기때문이다. 만약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100만원만 받아도 3100만원의 수익이 창출된다. 이러다 보니 삼형제가 모두 1인미디어를 한다. 기자대신 소상공인이 정답이다. 공무원을 협박하는 사례는 늘어나고 광고 때문에 소송도 벌어진다. 이들은 시·도의원에게 접근, 로비를 통해 악어와 악어새 처럼 기사를 쓰고 링크를 걸어 당사자에게 보낸다. 문자를 받은 이들 의원은 네이버 CP업체인지, 제휴업체인지도 모른채 핸드폰 문자로 보내온 링크가 기사로 열리니 대단하다도 여기는 시도의원도 있다. 이들에게 관련 시청 등에 광고를 수주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이들의 공생관계 사례는 끝이 없다.
서울의 봄 포스터. |
#6. 중앙언론사에 입사하려면 지금도 ‘언론고시’를 봐야한다. 수백대, 수천대 1의 경쟁을 뚫고 기자가 된다. 혹독한 수습기자를 거치면 부서별 배치를 해 진짜 기자의길을 걷는다. 특종에 목숨을 걸고 논평도 자유롭다. 이런 언론이 진짜 언론이다. 하지만 기자를 해본 적도 없는 기자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이지만 기사 하나도 제대로 작성못한다는 것은 더욱 문제다. 이 매체를 ‘언론’으로 볼 수 있느냐부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창의적이나 탐사보도, 기획기사라도 1년에 단 한건도 쓰지않는다. 하지만 입은 용감하다. 출입처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썼다고 광고비를 거둬간다. 같은 언론인이라고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이젠 난 아는 척도 안한다. 선·후배 호칭도 거부한다. 사실 기사 자체를 쓰지못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쇼킹하다.
#7. 유튜버도 아닌 가짜 기자가 큰 카메라와 촬영기를 들고 신년기자회에 등장한다. 보통 핸드폰이나 출입처에서 준 사진자료를 쓰지않고 큰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위세를 보인다. 혼자 ‘생쇼’를 하는 중이다. 유사 언론의 폭주는 기자다운 기자, 언론탄압에서 싸워온 대선배 기자들이 어렵게 구축한 민주주의 룰을 깨트리는 파렴치한 행위다. 일부 지자체 신년 기자인사회에서 기념품으로 준비한 쌀이 모자라 받지 못하자 ‘쌀을 달라’고 요구하는 기자도 있다. 마치 쌀을 받으로 온 것 처럼 생떼를 쓴다. 하지만 이들은 창피를 전혀 모른다. 동의 없이 남을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언론재단 윤리 강령도 ‘기자는 도청, 비밀 촬영 등으로 사생활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5항). 다만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만 예외다. 그러나 이들은 공무원 등과 대화할때 늘 녹취가 기본이다. 대화를 유도하고 걸려들면 협박해 광고를 갈취한다. 기자가 아무 사람, 아무 곳이나 들어가 녹취를 한다면 견딜 곳이 없을 것이다.
#8.기자는 뉴스의 당사자가 아니다. 제3자 입장에서 현상을 기록하는 관찰자이지 사건에 끼어들어 사실을 창조해 내는 것은 언론의 영역이 아니다. 사적인 농담을 악의적 편집 녹취해 협박해서는 안된다. 언론은 벌 주는 존재가 아니다. 마음대로 선악을 가르고 자의적으로 선별한 악에 징벌을 가한다면 그것은 깡패 집단일 뿐이다. 언론은 관찰하고 전달할 뿐 응징해선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매체는 공무원과 일부러 몸싸움을 하고 합의금으로 광고를 받아가는 일, 즉 물리적 응징까지 서슴지 않는다. 꼭 자해공갈단 같은 일도 한다. 광고를 안주면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공무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멱살 잡는 행패를 저지른다.
#9.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조차 무시하는 ‘유사 언론’의 폭주는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이들에게도 똑같이 언론 자유를 인정해준다면 조폭에게 흉기를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임을 주장하지만 언론으로 볼 수 없는 유사 매체에 대해 언론스스로 자정해야한다. 또 그들에게 준 취재의 특권을 거둬들여야 한다. 기자작성 능력이 없는데도 명함을 새기고 오늘도 활보하는 이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언론에서 빨리 떠나라.
#10.올해는 ‘자유언론실천선언’(선언)이 나온 지 50주년 되는 해다.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와 보도지침을 무기로 언론을 옥죄던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 180여명은 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언론 자유란 스스로 쟁취·실천해야 하는 과제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밝혔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먼저 나서자 이틀 사이 전국 31개 신문·방송·통신사 기자들도 일제히 언론 자유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나섰다. 이런 수많은 피눈물 속에서 언론자유와 후배들에게 좋은 언론환경을 물려주기위해 소신을 굽히지 않은 대선배에게 이런 불명예스러운 환경을 방관한 후배로서 정말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