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부 고모 씨는 ‘반품샵’ 사장이 운영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알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한다. 상품은 도시락부터 벽시계, 전자바이올린, 유아용 카시트까지 다양하다. 고 씨는 “21만원짜리 비데를 13만원에, 캡슐커피 30개 세트를 6500원에 건졌다”며 “새 상품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상태가 좋은 반품 제품을 찾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널뛰는 물가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물건을 사기 위한 소비자가 늘고 있다. 반품샵(리퍼브 매장)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이유다. 유통가는 소비 여력이 있는 이들과 지갑을 닫은 수요를 겨냥해 저가와 고가 상품을 동시에 내놓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12일 이커머스업체 티몬에 따르면 소비기한이 임박한 상품 300여 종을 할인가에 판매하는 ‘리퍼임박마켓’ 코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다. 구매 건수와 고객 수는 각각 47%, 45% 상승했다. 특히 소비자들은 식품과 가전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상품을 찾은 것으로 분석됐다.
패션업계도 초저가 전략에 발을 들였다. 소비자의 체감 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의류·신발’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2월 113.57이었다. 기준점인 2020년보다 13.57% 올랐다. 해당 항목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등락률은 지난해 6.7%로 교통·음식·숙박 등 12개 지출 목적 가운데 가장 높았다.
업체 입장에서는 ‘벌이’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다. 위메프도 마찬가지다. 이월상품과 SPA브랜드 수요 증가에 1만원 이하 패션상품으로 구성한 ‘99샵’을 선보였다. 1만원 이내 제품만 모은 티몬의 ‘만원의 행복’ 상시관은 지난해 4분기 거래액이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천원샵’으로 익숙한 다이소는 ‘5000원 후리스·조끼 패딩’ 등 저가 의류 라인을 강화했다. 이른바 ‘불황형 소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다. 덕분에 다이소 의류용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60%, 아이템 수는 약 180% 성장했다.
편의점을 찾는 수요가 증가한 현상도 유통가의 화두가 됐다. 편의점 업계의 승부수는 ‘PB(자체브랜드)’ 상품이다. CU의 지난해 전체 PB 매출은 전년 대비 17.6% 상승했다. 이마트24는 지난해 가격을 동결한 커피·우유 등 PB 제품의 매출이 크게 늘자 1분기까지 가격을 동결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설 선물세트는 양극화가 뚜렷하다. 고가의 과일·한우를 내놓는가 하면 용량을 줄이고 가격을 낮춘 ‘가성비 선물세트’의 품목도 늘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대형마트와 달리 백화점은 고물가 영향이 크지는 않아 차별화된 상품에 집중하는 분위기”라며 “1~2인 가구에 특화한 고급 제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상품이 늘어난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가의 ‘양극화 전략’이 되레 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농축수산물 선물 한도가 30만원으로 올라 유통 채널의 고가 선물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며 “유통 채널에서 중간 가격대를 빼고 고가와 초저가로만 상품을 내놓는 건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경계했다. 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