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된 세계 양대 운하…韓경제·코스피 또 ‘암울’ [홍길용의 화식열전]

2022년 초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동유럽에서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래도 “설마”하는 전망이 우세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됐다. 러·우 전쟁 이후 주요국에서는 에너지 등 원자재는 물론 핵심 기술의 자립 필요성이 부각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미중 갈등도 여전한데 2년만에 새로운 전쟁이 발발했다. 세계 해상물류의 핵심인 수에즈와 파나마의 양대 운하가 동시에 막히는 사상 초유의 사태다. 지정학적 불안과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전선은 불투명하고 상황 예측도 어렵다.

해운 운임이 급등하고 에너지와 식량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원재료 및 부품을 제때 공급 받지 못한 제조업 생산 차질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중국은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독일은 역성장의 늪에 빠졌다. 독야청청하는 듯 했던 미국 경제도 온도가 식어가는 모습이다.

경기침체는 고대했던 금리인하를 앞당길 수 있지만 공급망 교란으로 물가가 오르면 그 여지는 줄어든다.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먹구름이 짙어지는 모습이다. 무역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에너지 자립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우리 경제에는 최악의 환경이다. 새해 초 주요국 증시 가운데 유독 우리만 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보스포럼이 2023년 11월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블룸버그 자료 인용)

▶ 1956년 vs 2024년…수에즈 운하, 가자전쟁 평행이론

1956년 이집트가 영국과 프랑스의 통제 아래있던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한다. 가자에서 이집트와 충돌했던 이스라엘이 영국과 프랑스군의 지원 아래 수에즈운하와 접한 시나이 반도를 기습적으로 점령하며 2차 중동전쟁, 일명 수에즈 전쟁이 발발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전쟁에 반발, 예멘의 후티 반군이 최근 수에즈운하와 이어진 홍해에서 무력 도발했다.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시아파 이슬람 세력의 중동질서 재편 시도다. 미·영·불 연합 함대가 예멘의 후티 근거지를 직접 타격하면서 사실상 전쟁 상태로 돌입했다.

후티는 반군은 미국산 첨단무기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수니파 아랍연합군의 공세도 수년간 버텨냈던 단체다. 미사일과 드론 등 무장도 상당하다. 첨단 무기유도시스템이 없는게 약점이지만 미국과 대치 중인 이란이나 러시아로부터 은밀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최대 변수는 확전, 즉 이란과 미국의 참전 여부였다. 후티의 도발로 미군은 직접 발을 담그게 됐다. 반면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직접 참전은 하지 않으면서 중동의 긴장을 크게 높이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이란은 영해인 호르무즈해협 통제를 강화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2차 중동전쟁은 미국이 소련과 암암리에 손잡고 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 통제권 회복을 막으면서 막을 내렸다. 70여년 만에 수에즈운하의 안전이 다시 위협받게 된 상황은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약화를 의미한다. 중동의 패권 공백에 따른 글로벌 물류 차질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 파나마운하, 기후와의 전쟁…에너지 전환, 안보가 되다

파나마운하의 상황도 전쟁에 준한다. 파나마운하는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 무역 통로다. 미국이 2차 대전에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패권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에도 파나마운하가 있다. 지금도 파나마운하는 미군이 지키고 있지만 이번 상대는 그 힘이 상상 이상이다.

파나마운하는 갑문을 이용해 호수 물을 끌어와 인위적으로 수위를 높이는 방식이다. 충분한 물이 없으면 정상 가동이 어렵다. 지난해 기상이변인 엘리뇨(El Niño)로 100년래 최악의 가뭄이 닥치면서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으로 줄며 하루 40여 척에 달하던 통항 선박수가 반으로 줄었다.

엘리뇨는 보통 2년차에 더 강해진다. 2월부터 우기에 접어들지만 낙관하기 어렵다. 파나마 지역의 강우량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파나마운하가 예전 같은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후변화가 세계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 대표적 사례가 될 전망이다.

기후변화는 올해 글로벌 전문가들이 꼽은 최대 변수다. 안보, 경제성장, 인공지능(AI)과 함께 2024 다보스(Davos) 포럼의 4대 주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필요하다. 탈세계화에 따른 자원무기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도 유용하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는 에너지 안보전략 핵심이 됐다.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다 곤혹을 치른 유럽은 물론 패권 대결에 돌입한 중국과 미국이 자급 가능한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낮다.

▶ 운하위기 피해 큰 대한민국…에너지 안보 후진국 굴욕 피할까?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는 우리 기업의 유럽, 북미시장 주요 항로다. 운하가 제 기능을 못하면 수출은 물론 현지 생산기지 원자재 및 부품 공급이 어려워진다. 운하의 위기로 글로벌 경제의 침체가 깊어지면 우리 제품의 수요에도 악영향이다. 새로운 물류 전략이 필요해졌다. 상당한 비용이 들 수 있다.

기후변화의 피해가 구체적일 수록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서 앞선 선진국은 환경관련 무역규제를 강화하게 된다. 화석연료로부터의 탈출을 선언한 COP28 이후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탄소배출이 많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미미한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들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는 뜻이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재생에너지 보고서(Renewable 2023)을 보면 선진국 가운데 재생에너지 발전 전망이 하향된 곳이 우리나라다. 세계평균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은 2022년 현재 29.8%인데 대한민국은 8.1%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의 2030년 목표치도 21.6%에 불과하다. 전세계는 신에너지를 제외한 재생에너지의 2028년 전망이 42%다.

우리 정부는 석탄 대신 원자력을 최대 발전원(2030년 32.4%)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원자력 발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원료인 우랴늄은 해외에 의존해야 한다. 2030년까지 원자력 덕분에 발전부분 탄소배소 배출량은 현재보다 3분의 1가량 줄겠지만, 산업부분은 10% 가량 감축되는데 그칠 전망이다. 우리 제품이 해외에서 팔리려면 높은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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