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코인’ 상장 믿고 1200억 날렸다는데…이정훈 빗썸 전 의장, 사기 혐의 2심도 무죄

10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1월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12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전 의장이 2018년 당시 빗썸 지주사 지분 매각을 앞두고 김병건 BK그룹 회장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사업 계획이나 거래소 코인 등에 대해 다소 과장한 측면은 있지만, 계획적으로 속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서승렬 안승훈 최문수)는 18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제적 이득을 얻은 반면 피해자(김병건 BK그룹 회장)는 경제적 손실을 얻었다”면서도 “사업 관련 일부 과장된 진술이나 코인 상장 여부에 대한 정보 비대칭, 고지 의무 위반 등 민사상 책임은 일부 고려되지만 계약 자체를 형법상 처벌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건은 201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 의장과 김병건 BK그룹 회장은 빗썸을 운영하는 빗썸코리아의 지주사 빗썸홀딩스(당시 BTC 홀딩컴퍼니)와 빗썸홀딩스 지분 30%를 소유하고 있는 또다른 싱가포르 법인 DAA의 주식을 약 4000억원에 매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김 회장은 싱가포르에 BTHMB라는 법인을 세워 빗썸홀딩스와 DAA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빗썸의 경영권을 확보하려 했다. 김 회장은 계약금 등 명목으로 1200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김 회장은 이 전 의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계약 협의 과정에서 이른바 빗썸코인으로 볼 수 있는 거래소 코인을 만들어 빗썸에 상장시킬 예정이며, 김 회장이 이를 판매해 인수 대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속였다는 취지였다. 또 빗썸코인을 글로벌 거래소 연합 사이에서 통용될 수 있는 기축코인으로 만들고, 실제 모바일 결제와 연동 시키는 사업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고도 주장했다.

실제 BTHMB는 2018년 10월 BXA코인을 발행했다. 이를 위해 이 전 의장이 운영 중이던 암호화폐 개발사 비버스터(B.BUSTER)를 인수하기도 했다. 같은해 12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BXA코인은 빗썸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거래소 연합의 기축 코인이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BXA 코인은 상장되지 않았다. 김 회장은 잔금을 지급하지 못해 계약이 무산됐고 계약금 1200억원을 모두 날렸다.

핵심은 이 전 의장이 BXA 코인 상장을 미끼로 김 회장을 속이고 의도적으로 1200억원을 가로챘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이 계획적으로 김 회장에게 접근했다고 봤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이 빗썸 수익성 강화를 위해 해외에서 빗썸코인 프로젝트를 준비했으나 금융당국 문제 제기로 불발되자 공동 운영 주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상장(ICO)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빗썸홀딩스를 해외법인으로 인수시키고, 빗썸을 사실상 ‘외국 거래소’로 만든 뒤 거래소 코인을 발행해 수익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다. 당국 규제 등으로 코인 상장이 불발될 경우에는 주식 매매 대금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이 전 의장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검찰측 증거만으로는 이 전 의장이 김 회장을 속일만할 발언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해를 주장하는 김 회장의 진술이 모순된다고 봤다. 김 회장이 2018년 12월 직접 나선 기자간담회에서 BXA코인을 인수대금으로 사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인수대금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했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이 글로벌 거래 연합 사업이 주식 매매 계약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도 판단했다. 논의 과정에서 글로벌 거래소 연합 사업의 진행 수준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버스터 인수로 사실상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안 뒤에 더 많은 대금을 지급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2심 재판부 또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개인 재산을 희생하면서까지 계약을 이행하려했는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면서도 “피해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쌍방이 여러 차례 변호사 검토를 거쳐 확정된 계약서에 담긴 합리적 해석 범위를 넘어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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