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레트로 오락실’에서 ‘킹오브파이터즈’를 즐기고 있는 청년들. 김용재 기자 |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직장인 최모(32) 씨는 어린 시절 보던 ‘짱구는못말려’ 굿즈를 사기 위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인형·가방·스티커·편지지·키링까지 ‘짱구는못말려’ 굿즈에만 한 번에 20만원 가까이 썼다는 최씨는 “어린시절부터 봤던 애니메이션이라 짱구는못말려를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29) 씨는 옛날 게임을 하기 위해 ‘레트로 오락실’을 찾는다. 이씨는 이곳에서 90년대 유행했던 게임부터 2000년대를 휩쓴 철권·킹오브파이터즈·스노우브라더스 등 게임을 자주 한다고 언급하며 “친구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다 보면 어렸을 때 오락을 하던 기억이 자주 떠올라서 주말마다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네버랜드 신드롬’이 MZ세대(밀레니엄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에 퍼지고 있다. 네버랜드 신드롬이란 과거로 돌아가려는 행태를 추종하는 이들을 뜻하는 신조어로, 나이보다 젊게 살고 싶고 나이가 들길 거부하는 문화를 포괄한다. 과거를 추종하는 ‘복고’의 유행과 네버랜드 신드롬이 다른 점은 20·30세대가 주도해 추억의 과거 아이템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네버랜드 신드롬은 현실을 살아갈 위안이 된다는 설명이다. 직장인 황모(28) 씨는 “매일 매일이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예전에 하던 게임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예전 캐릭터가 그려진 굿즈를 개성 있게 표현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짱구는못말려 팝업 스토어. 김용재 기자 |
만화·캐릭터 업계에서도 오래된 캐릭터가 ‘편안함’을 무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슬램덩크·짱구는못말려 등 1990년대 유행한 애니메이션의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 팝업스토어에는 오픈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 런’이 일상화가 됐다. 또 미국에서는 1950년대에 나온 만화 캐릭터 ‘스누피 인형’이 지난해 가장 흥행한 장난감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게임 업계도 인기 온라인 게임의 20년 전 ‘초기 버전’이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메이플랜드’는 동시접속자 5만~6만명을 보으며, 인기 온라인 게임의 수치를 뛰어넘은 상태다.
메이플랜드를 플레이한다는 직장인 김성진(31) 씨는 “요즘 퇴근길이 너무 설렌다”며 “‘구관이 명관’이라고 요새 게임이 아무리 좋아도 옛날 게 생각난다. 어렸을 때 너무 재밌게 했던 추억들이 있는데 그땐 돈이 없었다. 근데 지금은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되고 경제력이 있으니 ‘현질’(현금을 주고 게임 머니를 사는 것) 해서라도 게임 캐릭터를 더 키우고 싶다”고 했다.
‘레트로 오락실’을 운영하는 A 씨는 “옛날 게임을 찾는 사람들은 이제 옛날 게임을 구경하고 사는 것 자체가 자신만의 취미로 자리잡은 것 같다”며 “청년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메이플스토리 초기 기반 ‘메이플 랜드’ 플레이 화면. |
전문가들은 이같은 네버랜드 신드롬 활성화의 이유에 대해 청년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구혜경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복고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 네버랜드 신드롬을 이해할 수 있다”라며 “누구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데, 현세대가 나이 들어가면서 그에 맞는 형태로 순환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다만 언제나 지금 사는 것이 팍팍하고 어려울 때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다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네버랜드 신드롬이 이제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며 “이 신드롬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주로 나타난다. 20대 청년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최근 젊은 세대는 ‘디지털 피로감’이 높기 때문에 과거로 회귀하고 싶거나 과거의 행태를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