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표지판. [사진=로이터]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기업들이 앞다퉈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미국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35년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금리 하락에 따라 낮아진 조달비용을 활용해 차입(레버리지)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미국 채권시장에서 투자등급 기업들은 이달 들어 1530억달러(약 204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는 1월 기준 달러 표시 회사채 발행금액으로 1990년 이후 30여 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해 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계획을 시사하면서 채권시장 금리는 크게 떨어졌다.
투자등급 회사채 금리는 5.34%로 지난해 11월 6% 수준에서 대폭 하락했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지수에 따르면 회사채 수익률과 미국 국채 수익률 간 격차(스프레드)는 1.01%포인트까지 축소됐다. 이는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차입자인 기업들은 더 낮은 이자비용을 누리기 위해 회사채 발행에 뛰어들고 있고, 채권 투자자들은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채권을 사들이기 위해 열중하면서 회사채 시장이 붐비고 있다.
리처드 조헵 씨티 글로벌회사채시장(DCM)책임자는 “미국 회사채 시장은 지금 불타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지금 장기 수익률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새해 첫 달은 신규 발행이 많긴 하지만 올해 1월 회사채 발행이 유독 급증한 것은 기업들이 채권 금리 하락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행 러시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매트 브릴 인베스코채권 수석포트폴리오매니저는 “채권 발행자는 몇 달 전보다 지금 자금을 빌리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며 “기업들은 지금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채권을 발행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차입의 3분의 2 이상은 은행 등 금융업종에서 이뤄졌다. JP모건이 85억달러, 웰스파고가 80억달러, 모건스탠리가 67억5000만달러를 조달했다.
이에 대해 조헵 책임자는 “은행들의 규제 자본 요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사태 이후 금융사들이 채권 발행 계획을 연기한 탓에 억눌렸던(펜트업) 채권 발행 수요가 올해 대규모 발행을 촉진한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비금융 업종에서는 에너지트랜스퍼(30억달러), T-모바일(30억달러), 캐나다리버티유틸리티(8억5000만달러), EQT(7억5000만달러) 등이 대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부정적인 경제 지표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두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린 오코너 웰스파고 하이일드채권 신디케이트 글로벌책임자는 “현재 모두가 경제 연착륙 이야기에 빠져 있다”면서 “완벽한 시나리오 가정 하에 채권 가격이 책정된 것처럼 보여서 단기적으로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는 촉매제가 있다는 불안도 존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