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NBC]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갑진년(甲辰年) 새해 첫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 증시가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기준에선 여전히 ‘과열’ 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대한 ‘버핏지수(Buffett indicator)’가 과열 상태에 놓여있다 평가할 수 있는 12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이후 3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한 것도 버핏지수가 ‘과열’ 상태에 머무는 데 한 몫 했다.
다만, 미국·일본 증시의 경우 버핏지수가 한국보다 크게 웃도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과 산업 혁신, 주주 가치 제고 등을 토대로 연일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30일 헤럴드경제는 지난 2012년 이후 전날까지 한국 증시의 일간 버핏지수를 도출, 분석했다. 이 결과 전날 종가 기준 국내 버핏지수는 121.2%였다.
버핏지수는 실질 GDP 대비 시가총액의 비율로 도출한다. 버핏 회장이 지난 2001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과 인터뷰에서 “적정 주가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최고의 척도”라고 강조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통상 버핏지수가 120%가 넘으면 ‘과열’ 상황으로 판단한다. 70~80% 수준이면 ‘저평가’, 100%를 넘으면 ‘거품’이 끼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증시는 분명한 ‘과열’ 상황이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작년 12월 29일) 129.9%로 2023년 일간 버핏지수 최고치를 기록했던 코스피 지수는 연초 기록적인 증시 하락세 속 불과 12거래일이 지난 지난 17일 버핏지수가 118.7%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다만, 17~18일 단 이틀만 120%를 하회했던 버핏지수는 다시 ‘과열’ 국면으로 올라섰고, 코스피 지수의 반등 분위기를 타고 다시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모양새다.
국내 증시에 대한 버핏지수 ‘과열’ 양상이 고착화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해 한국의 경제 ‘저성장’ 여파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실질 GDP는 1995조6209억원으로 전년 대비 1.4% 성장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성장률 -0.7%를 기록하며 ‘역성장’을 했던 지난 2020년 이후 3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3년 전을 제외한다면 미국 서프프라임사태로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 2008년 0.8% 이후 15년 만에 최저 성장률이다.
더 눈길을 끄는 지점은 작년 2%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에게 GDP 성장률이 역전 당할 것이 확실시 된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버핏지수는 한 국가의 주가가 장기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GDP와 비슷하게 움직일 것이란 전제로 설계된 지표다. 실질 GDP가 커질 수록 버핏지수가 낮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피벗(pivot, 금리 인하)을 앞둔 가운데 투심이 위험 자산을 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선 경제 성장를 위한 노력이 한국 증시에 씌워진 ‘과열’ 딱지를 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IMF 등이 한국 경제 성장률을 올해보다 더 높게 예상한 점은 희망적 요소”라고 평가했다.
OECD는 한국의 올해 예상 GDP 성장률로 2.3%를 제시했다. 주요20개국(G20) 평균치(2.8%)보단 낮지만 OECD 평균치(1.4%)는 물론 미국(1.5%), 일본(1.0%), 프랑스(0.8%), 영국(0.7%), 독일(0.6%)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선 높은 수준이다.
버핏지수 상으로 ‘과열’ 상태에 놓인 한국 증시가 추가 상승할 수 있는 방안을 미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미 증시 일간 버핏지수는 176.27%로 ‘극도의 과열’ 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1년간 기록했던 최저치(2023년 3월 13일)도 144.23%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서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지난 1년간 22.65%나 상승했고, 29일(현지시간) 종가 기준으론 4927.93포인트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같은 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3만8333.45포인트로 3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세웠다.
일본 증시도 연초 축제 분위기다. 전날 종가 기준 일단 버핏지수는 155.12%로 ‘극도의 과열’ 상태다. 작년 1월부터 버핏지수가 ‘과열’ 단계인 120%를 넘었지만, 닛케이(NIKKEI)225지수는 최근 1년간 31.33%나 올랐다. 지난 22일엔 3만6546.95포인트로 ‘버블(거품) 경제’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융·IT 등 무형 자산 중심의 시총 상위주가 포진한 미·일 증시에 비해 제조업 등 유형 자산 중심의 시총 상위주가 포진한 한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으며 버핏지수 역시 상대적으로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면서 “배당 증액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 가치 제고 정책과 더불어 소액 주주 권리를 훼손하는 물적 분할 등을 근절하는 주주 친화적 제도가 국내 증시에 자리 잡게 된다면 미·일처럼 버핏지수와 무관하게 국내 증시 시총과 주요 주가 지도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증권가에선 금융당국이 천명한 ‘자본시장 개선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 주가 부양이란 결과물을 내놓은 일본 도쿄(東京)증권거래소의 증시 부양책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도쿄거래소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자기자본이익률(ROE) 8% 미만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개선조치를 요구한 후 닛케이225지수서 저(低)PBR·ROE 기업의 전반적인 수익률이 양호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의 경우에도 금융당국의 증시 부양책이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주요주에 집중됐던 유입 자금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선 다음엔 반도체 외 업종으로도 확산됐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짚었다.
다만, 지난해 워낙 저점을 찍었던 탓에 올해 GDP 성장률엔 ‘기저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순수출’의 증가폭이 경기 회복은 물론, 국내 증시 가치 제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신중호 센터장은 “국내 시총 상위 기업들의 이익은 수출과 직결되는데, 미중 패권 경쟁 등 지정학적 문제 등으로 올해 흐름이 작년보다 확연히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 보이는 점이 리스크”라며 “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경기가 되살아난다고 하지만 저점에서 기존 수준까지 회복되는 것일 뿐, 새롭게 경제 규모를 키우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