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등산로 강간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이 지난해 8월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검사 체면 한번 세워 주이소. 시원하게 사형 집행 한 번 딱 내려 주고. ”(작년 8월 창원지법 피고인)
불특정 다수에게 흉기를 휘두른 살인범들에게 검찰이 사형구형으로 강력대처하고 있지만, 법원에서는 이들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가 줄을 잇고 있다. 사형제 폐지론까지 나오면서 법원의 사형선고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논의에도 재차 불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사형의 위헌성에 대해 재차 판단할 예정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잔혹한 살인수법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최윤종·조선·최원종·정유정은 검찰의 사형구형에도 중앙지법 등 1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지난달 무기징역 가석방 기간 중 세번째 살인을 저지른 60대 남성이 재차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사형이 내려질 수도 있던 흉악범들에게 연이어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지고 있는 것은, 최근 사형제 폐지논의가 끊이지 않으면서 법원의 사형선고 자체가 극히 줄었다는 점이 대표적 이유로 꼽힌다. 실제 2014년 강원도 군부대에서 총기 난사로 동료 5명을 살해한 혐의로 임모 병장이 2016년 사형 확정 선고를 받은 이후 사형 확정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 안인득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사형선고는 2019년 3건 있었으나 2020~2021년 한 건도 없었고 2022년 1건에 그쳤다. 작년의 경우 8월 창원지방법원은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69살 A씨에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공판 도중 피고인은 “검사 체면 한번 세워 주이소. 시원하게 사형 집행을 한 번 딱 내려 주고”라거나 “재판장님도 지금 부장판사님 정도 되시면 커리어가 있다. 사형 집행도 아직 한번 안 해보셨을 거니까 당연한 소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피고인은 사형선고 이후 항소했지만, “양형 부당은 변호인 주장이다. 사형제가 폐지돼선 안된다”며 검사에게 “내가 사형 집행이 되면 네 머리 위에서 영혼으로 계속 놀아줄게”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오는 7일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사형이 27년째 집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의 유일한 차이는 가석방 유무다. 형법상 무기징역은 20년 형기를 채우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형을 실제 집행하지 않더라도 무기징역보다 훨씬 강한 효과가 나온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무기징역이 가석방 가능성 있는 건 맞지만, 법원이 향후 교화후 가석방될 것까지 고려해 판결을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윤종 사건의 재판부는 “무기징역이 확정된 수형자의 가석방을 제한하는 방법 등으로 피고인을 완벽하게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무기징역형의 방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작년 10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유명무실해진 사형제 위헌여부가 다시한번 심판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6년과 2010년 두차례에 걸쳐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전자의 경우 7대2 압도적으로 사형 합헌이 나온 반면 후자는 5대4로 의견이 팽팽했다. 최근에는 2018년 부모를 살해한 A씨가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자 ‘사형제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따라 헌재는 세 번째 사형 위헌성을 심리 중이며, 이종석 소장의 임기가 10월인 점을 감안하면 상반기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미국과 함께 대표적 사형 존치국인 일본은 올해에도 범행 당시 미성년자(19세)였던 피고인 엔도 유키에게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정유정 사건의 재판부가 “아직 20대인 정유정이 남은 인생살이 중 교화돼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하는 등 피고인의 인권과 교화가능성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