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한때 상품의 명칭으로 사용됐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상표를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상표가 일반 수요자에게 객관적으로 특정 상품의 원료·속성 등에 기반한 용어라는 점이 증명돼야 무효라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커피의 옛말인 ‘양탕국’이라는 상표의 등록을 무효로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경쟁사가 양탕국 상표권자를 상대로 “양탕국의 상표 등록을 무효로 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특허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양탕국 측 손을 들어줬다.
양탕국은 서양에서 들어온 탕국이라는 뜻으로 개화기 당시 커피를 부르는 말이었다. A대표는 2015년 6월 ‘양탕국’ 상표를 특허청에 등록해 커피문화마을 등을 조성했다. 문제는 경쟁사가 2022년 5월, A대표를 상대로 “양탕국 상표는 무효”라며 특허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하면서 불거졌다.
경쟁사는 “양탕국이라는 용어가 커피를 지칭하는 옛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며 “구 상표법상 무효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은 상품의 원재료 등을 보통 표장으로만 사용한 상표는 무효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문구는 거래상 누구에게나 표시가 필요하므로 특정인의 독점적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서다.
A대표는 반박했다. “양탕국은 커피의 옛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며 “그간 양탕국을 알리기 위해 책을 발간하고, 설명회·전시회 등을 개최했다”며 자신이 정당한 상표권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경쟁사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심결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A대표가 불복하면서 사건은 법원으로 왔다.
특허소송은 ‘특허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2심제로 운영된다. 1심을 맡은 특허법원은 특허심판원의 주장을 뒤집고, A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법원은 지난해 8월, “양탕국이라는 용어가 상표 등록결정일(2015.6.9) 기준으로 일반 수요자에게 커피의 옛 명칭으로 인식됐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러한 증명이 없는 이상 공익적 이유로 특정인에게 그 표시를 독점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쟁사는 1심 판단에 불복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A대표가 양탕국의 정당한 상표권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특허법원 판결을 확정하며 A대표는 최종 승소하게 됐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상표가 과거 한때 사용된 적 있는 상품의 명칭 등으로 구성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특정인에게 그 상표를 독점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며 “상표등록 무효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상표등록 무효심판을 청구하는 당사자(경쟁사)가 주장·증명할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때 사용된 상품의 명칭으로 구성된 상표가 상표등록 무효사유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명시적 판시는 없었다”며 “이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상표등록 무효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해 보인 첫 판결”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