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원로배우 남궁원 (본명 홍경일·전 헤럴드 명예회장) 씨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장남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전 국회의원·전 헤럴드 회장)과 장녀 홍성아, 차녀 홍나리 씨가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원로배우 고(故) 남궁원(본명 홍경일, 전 헤럴드 명예회장) 씨가 8일 영면에 들었다.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등 유족은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을 엄수했다. 장지는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홍 회장은 추모사에서 “부모는 자식을 쏘아 올리는 활이라고 했다. 저희를 아주 높고 넓은 세상으로 힘껏 쏘아 올려 주신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온 평생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께 ‘정권이 바뀌고 선거철이 올 때마다 이런저런 자리와 출마를 종용받았는데 왜 한 번도 안 하셨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며 “아버지께선 ‘내가 국회의원을 열 번을 해도 사람들은 나를 영원히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한번 배우는 영원한 배우’라고 답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중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게 ‘나는 가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로써 행복했다’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저희에게는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한 번도 국회의원이나 재력가, 건물주로 기억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며 “오로지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영화배우, 자식과 아내에게서 사랑받는 가장으로서의 기억만 남기고 가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0~70년대 충무로를 주름잡던 고인은 몇 년 전부터 폐암 투병을 해오다가 5일 오후 4시께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4년 경기 양평 출생인 그는 한양대 화학공학과 재학 중 영화계에 입문했다. 조각 같은 외모로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리던 고인은 1959년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1964년 ‘빨간 마후라’와 1971년 ‘화녀’ 등 화제작에 출연하며 배우 인생의 전성기를 보냈고, 1999년 마지막 작품 ‘애’까지 모두 345편의 영화에 출연해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배우 생활을 하며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대종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고, 2016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앞서 전날까지 빈소에는 정계와 문화계, 언론계, 재계를 망라한 인사들의 발길이 오후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전날 오후 6시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유 장관은 고인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기도한 후 홍 회장을 위로했다.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권 상임고문은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정욱 회장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18대 국회에서 홍 회장과 함께 했던 ‘6인회’ 멤버 정태근 전 한나라당 의원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조문했다.
문화계 인사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전날 오후 4시께 빈소를 찾은 배우 장미희는 2시간 동안 장례식장을 지켰다. 장미희는 고인과 배우 선후배로 인연이 깊었다고 한다. 배우 오현경도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언론계에서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방준오 조선일보 부사장이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고, 홍정도 중앙홀딩스 부회장도 빈소를 방문했다. 재계에선 이원태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 박세창 금호건설 부회장이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빈소에는 늦은 저녁까지 고인 및 홍 회장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로 북적였다.
양근혁·안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