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 신타그마 광장에서 성 아이콘을 들고 있는 한 시위자가 동성 결혼 반대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그리스가 동성결혼과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을 합법화했다. 국민 대다수가 보수적인 성향이고, 정교회 국가로는 최초다.
15일(현지시간) AP와 AFP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의회는 이날 정부가 제안한 동성결혼과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을 허용한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76표에 반대 76표로 통과시켰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 중 2명은 기권했으며 의회에 출석하지 않은 의원은 46명이었다.
158석을 가진 우파 집권당 신민주주의당(ND) 소속 의원 수십명이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급진좌파연합(시리자)과 변화운동(파속)을 비롯한 야권이 찬성하면서 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00명의 과반수를 채울 수 있었다.
이 법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동성결혼 부부의 입양 등 완전한 친권을 인정했다. 다만 동성 부부가 대리모를 통해 부모가 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날 의회의 결정으로 그리스는 정교회 국가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허용한 나라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는 37번째다. 아울러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가운데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는 16개국, 동성 부부가 아동을 직접 입양할 수 있도록 허용한 국가는 17개국으로 늘어나게 됐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의회의 이번 결정이 “오늘날 그리스가 유럽의 가치를 지키는 진보적인 민주국가임을 보여주는 인권의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성소수자(LGBTQ) 가족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인 ‘레인보우 패밀리스 그리스’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통과된 기쁜 날이라며 16일 아테네에서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와 지지자 수십명은 아테네 도심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의회의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반면 인구의 80~90%가 신자인 그리스 정교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스 정교회는 어린이들이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자랄 수 있다면서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스 정교회 수장인 이에로니모스 2세 아테네 대주교는 동성결혼 합법화는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려 “그리스의 사회적 결속력을 해칠 뿐인 시도”고 비판했다.
지난 1월 미초타키스 총리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그리스에서는 찬반 양측 간에 논란이 이어졌다. 올해 초 여론조사에서도 동성 결혼 허용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찬성보다 많았다.
지난 11일에는 4000여명이 아테네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집회를 열었으며 이날도 의사당 밖에서 소규모 반대 집회가 열렸다.
그리스는 시리자 집권 시절인 지난 2015년 합법화 전 단계로 동성 결혼 당사자들에게 이성 부부와 유사한 수준의 법적 권리와 혜택을 주는 ‘시민결합’(civil union)을 법제화했으나 당시에는 아동 입양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