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인데 대기하래요” 수술 늦추는 병원들…의료대란 현실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힌 가운데 1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사직이 현실화하면서 현장 곳곳에서 ‘의료대란’이 시작되고 있다. 주요 병원들이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일부 진료과는 입원과 수술 스케줄을 연기하고 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른바 '빅5'라고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들은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기정사실화하고 수술 스케줄 등을 조율하면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5 병원인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은 오는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오는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병원들은 이미 다수의 전공의가 사직 의사를 표하고 있어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는 전공의들은 교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 상태를 점검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 병원에서 의료진이 복도를 지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미 주요 병원에서 수술 스케줄이 조정됐다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다. 이후 일부 진료과는 환자들의 응급·중증도를 검토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있다. 마취과 전공의는 수술 중 마취과 교수의 마취 업무를 보조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역할을 한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 집단사직이 현실화했을 때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사전에 수술과 입원을 조정할 수 있을지, 대체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 지 등을 논의 중이다. 대부분 병원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응급 수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전면 파업으로 인해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들의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서울시내 병원에서 오는 21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암 환자는 환우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원 안내하는 문자가 오지 않아 전화해보니 월요일(19일)은 돼야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일단 대기하라고 하더라”며 “입원해도 수술이 취소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사연도 전해졌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사직이 가시화되면서 수술 일정이 조정되는 모양새다. 난소암으로 국립암센터에 수술 일정을 잡았는데 무기한 연기됐다거나, 수술을 앞두고 입원했다가 한 달여가 밀려 하루 만에 퇴원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수술이 미뤄진 건 없다”며 파업에 따른 수술 중단 등에 대해서는 내일(19일) 오전에 관련 회의를 열고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힌 가운데 1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 병원에서 의료진이 휠체어를 탄 환자앞을 지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서 예정됐던 입원과 수술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이미 입원 중인 환자를 돌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채혈이나 요도관 삽입, 환자로부터 수술 전 동의서 서명 확인 등 전공의들이 맡았던 업무를 간호사에 맡기는 경우가 지속해서 보고된다. 일부 병원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의료계에서는 2020년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이 병원 밖을 나섰던 때처럼 의료 현장에서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당시에도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휴진 등에 돌입하자 각 병원에서 임상강사와 교수 등을 투입한 바 있다.

다만 당시에도 전공의의 집단휴진이 이어지면서 현장의 인력 부족이 심화한 데 따라 급하지 않은 수술을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각 병원에서는 전공의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오는 20일이 돼야 정확한 사직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만일에 대비해 환자 안전과 진료 불편 최소화를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병원 차원의 대처도 있겠지만 진료과별로 융통성 있게 조절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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