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큰뜻 이을 것”…푸틴 새 정적 떠오른 나발니 아내

사망한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가 16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알렉세이를 죽인 푸틴은 내 영혼의 절반을 가져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머지 반쪽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내가 포기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최근 시베리아 감옥에서 사망한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19일(현지시간) 유튜브를 통해 “나발니의 대의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푸틴이 알렉세이를 살해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곧 밝힐 것”이라며 “우리는 이 범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발나야는 지난 16일 남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푸틴 독재 체제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그는 16~18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예정에 없던 연설을 통해 “만약 그것(나발니의 사망)이 사실이라면 푸틴과 그의 정부는 저지른 일에 대해 벌을 받을 것”이라며 “지금 러시아에 있는 악(惡)을 물리치고 끔직한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여기 있는 모든 이와 전세계 사람들이 뭉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그는 벨라루스의 망명 야당 정치인이자 마찬가지로 남편이 투옥된 스베틀라나 치하노스카야를 만나 정치적 연대감을 강조했다.

지난 2013년 10월 27일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운데 오른쪽)가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와 러시아 모스크바 에서 열린 반체제 시위에 참여했다. [로이터]

푸틴에 대한 나발나야의 규탄은 서방 세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나발나야와 만난 직후 소셜미디어(SNS)에 “나발나야의 말 대로 푸틴이 러시아인 것도, 러시아가 푸틴인 것도 아니다”며 러시아 시민사회와 독립 언론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U와 미국은 나발니 사망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였던 나발나야는 1998년 튀르키예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나발니를 만나 결혼했다. 나발니와 나발나야 사이에는 딸 다샤와 아들 자하르가 있다.

나발나야는 직접 정치활동을 하기보다는 가족을 돌보며 나발니를 뒤에서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하퍼스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저의 책무는 다른 것보다 우리 가족이 하나로 유지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인터뷰에선 남편에 대한 미행, 자택 압수수색, 계좌동결 등이 가족에게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언급하며 “긴장을 풀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알렉세이가 중간에 그만두면 전혀 멋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부를 잘 아는 주변인들은 나발나야가 나발니의 견해를 공유할 뿐 아니라 나발니의 정치적 식견에 강한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나발니의 반부패재단 직원인 안나 베두타는 “나발니의 모든 경력 단계마다 나발나야는 항상 곁에 있었다”며 “두 사람은 일종의 텔레파시가 통했고 때로는 서로 말할 필요도 없이 같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나발니는 나발나야와 가족들과의 시간을 담은 사진과 비디오를 자주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는데 이는 사생활을 극도로 감춰온 푸틴 대통령과 대조를 이뤘다.

지난 2013년 나발니가 횡령사건으로 첫 실형을 선고 받았을 때 나발나야는 “그놈들은 절대 우리의 눈물을 보지 못할 것”이라며 격한 반응을 나타냈다.

2020년 나발니가 비행기 안에서 신경작용제에 중독돼 쓰러져 시베리아 옴스크의 병원에 입원하자 나발나야는 반체제 단체와 독일의 비정부기구 ‘평화를 위한 시네마’ 등을 통해 나발니의 해외 이송을 촉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나발니를 독일로 보내야 했다. 이같은 노력에 대해 나발니는 깨어난 뒤 인스타그램에 “율리아, 당신이 날 구해줬어”라고 올리기도 했다.

2021년 나발니가 러시아로 귀국하자마자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체포되자 여권 심사대에서 그에게 작별 키스를 하는 나발나야의 모습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나발니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 러시아를 사랑했고 우리의 힘과 미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는 3월 17일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최대 정적인 나발니가 사망하자 나발나야는 반(反) 푸틴 진영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나발나야를 제외하면 나발니의 지휘봉을 이어받을 뚜렷한 인물이 없는 상태”라고 평가했다. 나발니의 최측근들은 이미 나발나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상태다.

일찌감치 나발나야의 정치적 잠재력을 감지한 러시아 국영 언론과 친 푸틴 블로거들은 그를 깎아내리기 위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가 러시아 여성으로선 지나치게 활동적인 성격이라고 비난하거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등이다.

나발나야가 나발니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반 체제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나발나야는 서구적인 자유주의 가치의 지지자일 뿐 아니라 서방이 푸틴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용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러시아 대중들에게 스며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발나야의 성공은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을 개발하고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기 위해 전문적인 팀을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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