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이수민 “‘이기는 음악’이 아닌 ‘사람을 위한 음악’ 하고파” [인터뷰]

비올리스트 이수민 [곤지암국제음악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바이올린보다 5도 낮고, 첼로보다 8도 높은 악기. 날카롭고 섬세한 고음을 자랑하진 않지만, 온화하고 따뜻한 울림이 악기를 다루는 사람마다 스민다.

“비올라는 굉장히 아름다운 멜로디로 피어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주선율을 서포트하거나 큰 구조를 담당하는 중음역대의 악기예요. 그래서 솔리스트가 드문 편이죠.”

비올라를 흔히 ‘바이올린의 형님’ 격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두 악기는 생김새만 닮았을 뿐 많이 다르다. 비올라의 크기는 바이올린보다 조금 크고, 현은 더 두껍고 간격이 넓다. 때문에 빠른 연주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바이올린과 연주법이 다르다. 특히나 하나의 작품 안에서 비올라의 음색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탓에 ‘비올라 농담집’이 생겨날 정도로 독특한 위치를 가진 악기다.

비올리스트 이수민(44)은 하지만 “중음역대가 귀에 확 들어오진 않지만, 앙상블에선 중음역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전체적인 음악의 질이 떨어진다”며 “잘 드러나진 않지만 못하면 금세 티가 나는 악기”라고 했다. 존재를 감추며 자신을 드러내는 악기, 온화한 성품의 현인 같은 악기가 비올라인 것이다.

비올리스트의 길을 접어든 많은 연주자들은 대부분 바이올린을 하다 중음역대에 매료돼 악기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비올리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나 첼리스트에 비해 숫자도 적고, 비올라만을 위한 음악도 적은 편이다. 이수민은 그 드물다는 솔로 비올리스트 중 한 명이다. 서울대를 비롯해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며 거의 매해 독주회를 열고 있다. 자신의 이정표를 따라온 그에게 40대에 여는 리사이틀(3월 5일·예술의전당)은 조금 더 특별하다.

비올리스트 이수민은 피아노를 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비올라라를 시작했다. 그는 비올라에 대해 “잘 드러나진 않지만 못하면 금세 티가 나는 악기”라고 했다. [T.W.KIM 제공]

이수민은 피아노를 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비올라를 손에 쥔 ‘희귀 케이스’다. 그는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는 지속적인 질감이 없는데, 마찰에 의해 연주하는 비올라는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은 깨질 것 같은 섬세한 매력을 가졌다면, 첼로는 깊은 울림이 있어요. 비올라는 바이올린처럼 연주하지만 울림은 더 크고 질감은 두껍고 더 많은 마찰을 내는데, 그 부분에 마음이 끌렸어요.”

서울대 졸업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는 쾰른 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까지 마쳤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늘 연주의 퀄리티나 레퍼토리에 있어 새로운 것을 연구해오면서 음악도 달라지고, 음악관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민도 여느 연주자들처럼 무수히 많은 콩쿠르를 통해 자신을 증명했다.

“음악도들은 끊임없이 경쟁하며 성장해요. 때로는 음악의 본질을 잊고 이기기 위해 달려가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다 음악적으로 교감을 나눴던 권혁주(1985~2016) 바이올리니스트의 죽음을 마주하며 저의 음악관도 달라졌어요. 그 분을 보며 평생을 음악에 헌신하고 청중이나 누군가에게 주력하는 것이 음악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혁주는 2004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덴마크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뛰어난 재능의 음악가였지만, 젊은 나이에 급성 심정지로 요절했다.

한 음악가의 생을 마주하며 이수민의 음악관은 달라졌고, 교육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학생들에게도 콩쿠르 우승에 목표를 둔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라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음악가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올리스트 이수민 [곤지암국제음악제 제공]

이번 리사이틀에선 요크 보웬(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Op.54),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코다이, 브람스의 곡을 연주한다. 요크 보웬은 비올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로 꼽힌다.

이수민은 “당대 훌륭한 비올리스트가 존재할 때 뛰어난 곡들이 많이 나왔다”며 “영국엔 라이오넬 테르티스와 같은 뛰어난 비올리스트가 있을 때 보웬을 비롯한 영국의 작곡가들이 비올라 곡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보웬은 비올라의 매력을 굉장히 잘 드러내는 음악을 많이 썼다.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역시 비올라의 따뜻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곡”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섯 곡을 발췌해 들려준다.

비올라와 함께 해온 지난 30여년은 그에게 끊임없는 변곡점의 연속이었다. 세계적인 현대 음악단체인 앙상블 모던(Ensemble Modern)이 주관하는 아카데미 IEMA(International Ensemble Modern Academy)에서 한국인 최초로 활동할 당시 ‘살아있는 작곡가’들과 교류한 경험은 음악가로서 한 단계 성장하게 해줬다. 진은숙(63), 볼프강 림(72), 외르크 비트만(51) 등과 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수민이 음악을 대하는 방향성을 다잡게 해줬다. 그는 “당시의 경험으로 옛날 곡들을 연주할 때에도 작곡가들이 정말 원했던 음악을 고민하게 된다”며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질수록 음악과 작곡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도 커진다”고 했다.

이수민은 자신의 오늘에 대해 “40대가 된 연주자는 음악적으로 정점의 시기를 맞는다고 한다”며 “나의 현재를 정점이라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의미있는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비올라를 손에 쥔 이후, 그는 비올라를 닮아갔다. 그 역시 “악기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며 웃었다.

“비올라는 음악적으론 매개체 역할을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잃으면 안되는 악기예요. 모든 기악 연주자들이 추구하는 경지는 악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할 때, 좋은 연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올리스트로서 나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계속 정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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