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전임의도 이탈 움직임 가속화…외과 교수 마저 “그만두겠다”

업무개시명령에도 의료 현장에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의 면허 정지·처벌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인 4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형병원 일부 전임의(펠로우)들의 의료현장 이탈도 시작됐다. 전임의들은 신규 계약을 포기하는 형태로 집단행동에 동참했고,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를 대표하는 외과 교수도 사직을 예고하면서 ‘의료공백’ 우려가 확산일로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전임의 절반 이상이 미계약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대다수의 전임의들은 의료현장을 떠나 집단행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워온 전임의들마저 대거 병원을 떠나게 되면 의료공백은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임의란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1~2년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과정을 거친다. 외래 진료는 물론 환자 입원과 전원 등을 결정하고, 진료와 검사 보조는 물론 수술을 돕는 역할을 하는 핵심 인력이다.

특히 ‘빅5’ 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은 37%, 전임의 비중은 16%로, 전공의와 전임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공의들이 사라진 빅5 병원에서 전임의들마저 대거 계약을 포기하게 되면 중환자 수술이나 외래 진료도 어려워질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전체 전임의 수는 약 280명 정도인데, 대부분이 이번주에 신규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일부 인원이 계약을 포기한 상태고, 계약을 망설이는 전임의도 꽤 있다. 계약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관계자 역시 “계약 포기 인원이 정확하게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계약을 포기하는 이들이 절반 정도 된다”라며 “전임의 가운데 약 70% 정도가 이번주 신규 계약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성모병원은 임용 예정이던 전임의 절반 이상이 ‘미계약’ 상태라고 파악됐다. 또 서울대병원의 경우 신규 계약을 맺은 전임의 가운데 일부가 임용 포기서를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전임의마저 병원을 떠나가면 남은 교수들이 오롯이 병원 진료 전반의 업무를 떠안아야 해 이들의 피로도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에 이어 전임의들마저 대거 이탈하게 되면, 남은 의료진들의 ‘번아웃’ 우려가 커지기 때문에 수술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장기 이탈에 대비해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입원 환자 관리 등에 PA 간호사(진료지원 간호사)를 투입하거나 신규 의사 채용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 집단이탈로 인한 의료 파행이 2주째 이어진 4일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중앙수술실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

정부의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과 사법절차가 본격화하자 병원을 지켜오던 대학교수의 공개 사직 사례도 등장했다. 윤우성 경북의대 혈관외과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저는 외과 교수직을 그만둔다. 이미 오래전 번아웃도 됐고, 더 힘만 빠진다”라며 “외과가 필수과라면 현재 그 현장에 있는 제가, 우리가 도움도 안 되고 쓸 데 없는·나쁜 정책이라고 말하는데 왜 귀 기울이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교수는 “지금 의료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정부는 여론몰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결론과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후배 전공의들이 낙담하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협박하고 있다. 선배 의사로서 의료 현장에 서 있는 것이 떳떳하지 않아 사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밋빛 미래도 없지만 좋아서 들어온 외과 전공의들이 낙담하고 포기하고 있고,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면서 “의료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 기성세대 의사들인 우리가 욕먹어야 할 것을 의사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고 일반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 역시 SNS를 통해 “인턴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나간다는데 사직을 막겠다고 면허정지 처분을 하는 보건복지부 행태나 교육자의 양심이라고는 없는 총장들의 생각 없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배 교수는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려면 더 많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라며 “그러나 이런 의사들의 면허를 정지한다고 하는 복지부 발표와 현재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모교 총장의 의견을 듣자니,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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