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윳돈 9할 연금투자, 빨리 준비해야 승자”

‘거안사위(居安思危·안정 속 위기 대비)’ . 이 사자성어는 개인 노후준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은퇴가 멀다고 느껴질수록 준비를 해둬야 더욱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은퇴가구의 적정 생활비는 300만원을 훌쩍 넘지만 실제로는 최저 생계비도 충당 못해 허덕이는 노령인구 비중이 높다. 생활비 마련도 60% 이상을 공적 연금·수혜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노후(NO後)준비, 지금부터’ 시리즈를 통해 각종 연금상품 파헤치기, 절세 노하우, 전문가 심층인터뷰 등으로 독자들과 성공하는 100세 시대의 문을 활짝 열 계획이다. [편집자주]

부동산에 쏠린 자산, 높은 안전추구 성향, 걱정만 하는 부실한 노후준비는 국내 한 은퇴생활 연구기관이 꼽은 ‘한국 자산관리의 3대 문제점’이다. 이렇다 보니 한 푼이라도 더 주는 예·적금에 매달리고 부동산에 유동성이 묶이면서 은퇴 후 생활비도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문제는 알면서도 걱정만 한다는 것. 주식시장을 외면한 연금자산 운용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인들의 은퇴 이후 자산형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한국형 장기투자 상품을 개발하는 박희운(사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솔루션본부 전무는 연금 투자 문턱 앞에서 주저하는 이들에게 “연금은 복리의 세계”라며 “하루 빨리 준비하는 사람이 승자”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꾸준히 투자한다면 복리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관심을 기울이면 은행 이자보다 더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상품들도 꽤나 있다고 말이다. 박 전무는 “일단 금리상품은 인플레이션을 이기지 못한다”며 “생애주기별에 맞는 투자성향과 자산배분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95만원 받기 vs 19만원 받기=박 전무는 인터뷰하는 동안 수차례 포물선 그래프를 직접 그려가며 생애주기를 설명했다. 그는 손으로 그래프 상단을 타고 올라가더니 “한국인은 27세부터 34년간 소비보다 노동소득이 더 많은 ‘흑자 인생’을 산다. 40~50대 초반에 정점을 찍고 61세부터는 다시 적자로 돌아선다”며 0 밑으로 내려온 그래프 꼬리를 짚었다. 인생에서 흑자를 내는 기간은 30여년에 그치는데, 이 기간을 연금을 집중적으로 모아 노후 대비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대 수익률 6%로 매월 50만원씩 연금계좌에 쌓는다고 가정해보자. 35세부터 55세까지 꾸준히 굴린 사람의 경우, 납입원금 1억2000만원을 웃도는 운용수익 1억9309만원을 모은다. 같은 수익률에도 45세부터 납입할 경우, 운용수익(5218만원)은 납입원금(6000만원)을 밑돈다. 60세가 되어 매달 인출할 수 있는 생활비를 계산해보자면 체감 격차는 더 커진다. 35세부터 납입한 사람은 95만원을, 45세부터(41만원)·50세부터(19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여유자금 90% 노후대비 자산 투자해야”=그가 말하는 연금투자의 첫 준비물은 일단 ‘예적금에만 갇히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박 전무는 “수익률 1%만 높아져도 은퇴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사이클을 타는 주식시장 조정기는 연금과 같은 장기투자자들에겐 기회의 시기였다. 하지만 금리상품은 절대로 인플레이션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 여유자금의 90%는 소득이 중단되는 노후를 대비한 ‘핵심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며 “나머지 10%는 비트코인이든 레버리지를 하든 궁금했던 상품에 투자해도 좋다”고 말했다.

‘90%는 너무 많지 않나’고 되묻자 “미국이라면 보다 적어도 괜찮다. 하지만 한국 소득주기에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노후대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임금 정점인 40대 후반~50대 초에 받는 임금을 100으로 잡으면 미국인은 60세를 넘겨도 계속 근무할 수 있어 85선까지 내려오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한국은 퇴직, 임금피크제 등으로 60세를 넘기면 40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박 전무는 “투자의 목적은 집 사기, 자녀 대학 보내기 등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은퇴 후 생활비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흑자 인생서 적금만 하기 아깝지 않나”=하지만 한국 퇴직연금은 여전히 기대수익률이 낮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려 있는 실태다. 2022년 한국의 퇴직연금 적립금 335조원으로, 이 중 예·적금, 국채 등 기대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 보장형은 무려 85%(286조원)에 이른다. 반면, 연금 선진국인 호주는 단 9%, 나머지 91%는 실적배당형으로 꽉 채운다. 그는 “한국의 연금 수익률(연 환산 2.78%)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호주는 무려 7.75%에 달한다. 젊을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키워 수익률을 챙겨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고려가 거의 없는 게 현주소”라고 우려했다.

박 전무는 “특히 미래 세대의 경우, 국민연금 기금 고갈로 노후에 기댈 수 있는 몫이 줄면서 연금 투자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만일 이 모든 것이 어렵다면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 위험자산 비중을 낮추고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Target Date Fund)에 가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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