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영화표·전기료·분양가 등 32개 항목에 부과돼 ‘그림자 조세’로 불렸던 부담금이 폐지·감면된다. 지난 2022년 부담금 관리체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전면 정비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로써 연간 2조원 수준의 국민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부담금 정비 및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시내 영화관 모습 [연합] |
부담금은 특정한 공익사업의 수행을 위해 공공주체가 조세 외에 부과하는 금액으로, 지난 2022년 말 기준 91개 항목에서 22조4000억원 규모로 운용 중이다.
정부는 국민·기업의 부담이 커지거나, 경제·사회 여건 변화에 따라 타당성이 약화한 부담금이 있다고 보고 22년 만에 전면 개편 작업에 나섰다.
이에 따라 폐지·감면 대상에 오른 부담금은 각각 18개, 14개다. 국민건강이나 환경보전 등의 목적이 있거나 금융기관 출연금 기반, 원인자·수익자 부담원칙에 부합하는 부담금 55개는 제외됐다.
우선 국민 생활 밀접 분야에서는 8개 부담금이 사라지거나 줄어든다.
영화관람료에 포함되는 입장권 부과금(관람료의 3%)이 폐지된다. 영화 관람료 1만4000~1만5000원 기준으로 약 420~450원의 감면 효과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폐지되는 부담금이 관람료에 반영될 수 있도록 관련 기업과 협의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부담금 정비 대상 [기획재정부 제공] |
전기요금에 포함되는 전력기금 부담금 요율은 단계적으로 인하해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현재 3.7%에서 올해 7월 3.2%, 내년 7월 2.7%로 순차적으로 내리는 방식이다. 에너지 비용이 원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뿌리기업은 연간 62만원, 일반 가정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8000원의 전기료 경감 효과를 볼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아울러 천연가스(LNG) 수입부과금도 1년간 한시적으로 30% 인하해 가스요금 인하를 유도한다.
항공요금에 포함되는 출국납부금은 1만1000원에서 7000원으로 인하하고, 면제 대상은 만 2세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확대한다. 국제교류기여금은 복수여권을 발급할 때 3000원 깎아준다. 유효기간 10년 기준으로 1만5000원에서 1만2000원, 5년 기준 1만2000만원에서 9000원으로 각각 인하된다. 단수여권과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때는 면제한다. 자동차보험료에 포함되는 자동차사고 피해지원사업 부담금 요율은 3년간 1.0%에서 0.5%로 인하한다.
기업 등 민간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11개 부담금도 손질된다.
개발사업시행자에게 부과되는 개발부담금은 올해 사업 인가분에 한해 수도권은 50% 감면, 비수도권은 면제를 추진한다. 분양사업자에게 분양가격의 0.8%(공동주택 기준)를 부과하는 학교용지부담금은 폐지된다. 건설경기 활성화에 더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한다는 취지다.
경유차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환경개선부담금은 영세 자영업자일 경우 절반으로 깎아준다. 폐기물을 소각·매립할 때 부과하는 폐기물처분부담금과 관련해서는 중소기업 감면기준 적용 대상을 연매출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한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차관이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부담금 정비 방안 사전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
농지 전용에 부과하는 농지보전부담금은 비(非)농업진흥지역에 한해 개별공시지가의 30%에서 20%로 요율을 인하한다. 과거와 달리 폐기물 관리상 환경문제 발생 우려가 적은 껌은 폐기물부담금 부과대상에서 제외한다.
사회 여건 변화에도 관행적으로 존치됐던 13개 부담금은 전면 폐지된다. 여기에는 연초경작지원 등의 사업을 위한 출연금, 수질개선부담금, 관광지 등 지원시설 이용자·원인자 부담금, 도로법 원인자부담금, 공고잇설 설치비용 부담금 등이 포함됐다.
이번 조치에 따른 부담금 경감 규모는 폐지 5000억원, 감면 1조5000억원 등 총 2조원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부담금 경감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도록 법령 제·개정에 즉시 착수해 시행령 개정사항은 7월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폐지 부담금에 대한 법률 개정안은 올해 하반기 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치 이후 존치되는 부담금에 대해서는 부과 타당성과 부과 수준의 적정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부담금 관리체계는 부담금 신설 타당성 평가 도입, 부담금 존속기한 의무 설정, 신속한 권리구제 등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부담금 폐지·감면 이후 연계 사업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김윤상 기재부 2차관은 “부담금 수입 규모가 2조원 줄어들지만 현재 보유한 기금 여유재원을 활용해 최대한 그 부분을 메꿀 예정”이라며 “관행적으로 지출됐던 사업에 대한 지출 효율화 작업도 동반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