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 기업대출 상담창구 [연합] |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우리나라 기업이 진 빚(신용)이 국가 경제 규모(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4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 수준이다. 금리가 올라 이자가 부담인데도 ‘빚으로 버틴 기업’이 늘면서, 기업 열 곳 중 네 곳은 영업활동으로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3월 금융안정상황’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민간신용 레버리지(민간신용/명목GDP)는 224.9%로 나타났다. 전분기(225.6%) 대비 하락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이 버는 돈에 비해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2.25배로 과도한 수준이란 뜻이다. ▶관련기사 3면
빚은 가계에선 1년전보다 0.5% 줄어든 반면, 기업에선 6.2%가 늘었다. 기업신용은 2780조1000억원을 기록하면서, 금리 인상이 본격화 된 2022년 1분기 이후 404조원이나 증가했다. 2년새 20%가 확대된 것이다. 이자비용이 확대되는 시기에 기업 빚이 늘었다는 것은 사실상 빚으로 경영활동을 이어나가는 기업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작년 3분기 기준 영업이익으로도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 1미만 기업 비중은 44.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격탄을 맞은 2020년(40.3%) 때 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다. 기업 전체의 이자보상배율도 1.6배로 사실상 우리 기업 대부분이 이자를 내고 나면 남은 이익이 없다.
성장성도 문제다. 매출액 증가율은 작년 3분기 기준 -4.0%를 기록했다. 매출액 증가율은 2020년 -4.7% 이후 2021년(19.2%), 2022년(18.9%) 2년 연속 성장세를 나타냈으나, 최근 들어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역시 2.5%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신용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은 “금융권 전체적으로는 연체율(1.65%)이 장기평균(2009~2019년, 1.81%)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비은행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1.93%다.
가계 빚도 지난해 4분기 기준 1886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가계신용 레버리지는 100.6%로 전분기(101.5%) 대비 1%포인트 낮아졌다. 2020년 2분기(98.2%) 이후 3년 6개월 만 최저치다. 집값 상승 기대가 꺾이면서 주택관련대출의 증가폭이 축소되고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감소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금리와 물가가 높아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부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취약차주 비중은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금액 기준 취약차주는 전분기 5.2%에서 0.1%포인트 늘어난 5.3%를 나타냈다. 차주수 기준 취약차주도 6.5%에서 6.6%로 증가했다.
한은은 “금융당국은 기업부채 관리와 함께 올 2월 가계 부문에 도입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효과를 모니터링하면서 DSR 적용 범위에 대한 적정성 검토 및 개선방안 마련 등 꾸준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올 2월 기준 단기 금융불안 수준을 평가하는 금융불안지수(FSI)는 16.9로 작년 말 18.0 아래로 내려온 뒤, 주의 단계의 중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중장기적인 금융불균형 정도를 평가하는 금융취약성 지수(FVI)는 부채 증가세 둔화, 주택가격 약세 등의 영향으로 작년 4분기 32.9로 2022년 2분기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