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지수 ELS 피해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처음으로 은행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편입증권(ELS) 관련 손실을 본 고객에게 자율 배상금을 지급한 사례가 나온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원활한 100% 자율배상이 힘들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라 최대한 자율배상을 진행하겠다는 게 은행의 계획이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끝까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거나 개별 소송에 들어가는 등 쉽게 합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금감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에만 홍콩 H지수 편입 ELS(ELT·ELF) 관련 분쟁조정 신청이 1138건 접수됐다. 홍콩 H지수 편입 ELS에 대한 분쟁조정 신청은 지난해 10월 6건, 11월 175건, 12월 809건, 올해 1월 1893건으로 점점 증가했는데, 분쟁조정기준안이 나오기 직전인 2월에도 1000건이 넘는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에만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2081건의 분쟁조정 신청이 들어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농협은행이 993건 접수됐고, 신한은행 537건, SC제일은행 194건, 하나은행이 166건으로 집계됐다. 우리은행을 포함한 기타 은행에선 68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종합해보면 은행권에서만 지난 5개월간 총 4039건의 분쟁조정신청이 접수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은행의 자율배상을 수용하는 고객이 늘어나긴 할 것”이라면서도 “분쟁조정신청을 넣은 고객들 중에는 일부 은행의 배상이 성에 안 차고,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이들도 존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에 따르면 금감원은 분쟁조정 신청을 받았을 때 당사자에게 합의를 권고할 수 있지만, 30일 이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지체 없이 조정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다만 ▷분쟁조정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금감원장이 인정하는 경우 ▷합의권고절차 또는 조정절차를 진행할 실익이 없는 경우 ▷소가 제기된 경우 ▷신청 내용의 보완을 2회 이상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은 경우 등 몇가지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앞서 홍콩 H지수 편입 ELS를 판매한 7개 은행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의 기준안에 기초해 자율 배상하기로 방침을 확정했으며, 자율배상금을 지급한 사례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홍콩H지수 편입 ELS 사태가 범국가적인 사건으로 번진 만큼, 업계는 은행권의 자율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금감원·법원을 통해 이의를 제기하는 고객들까지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이세훈 수석부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살펴보면, 금감원은 고객이 은행의 자율 조정 배상 기준에 불만을 가져 합의되지 않았을 때 다시 분쟁조정 신청을 받았다. 소송을 진행 중인 투자자는 1심 판결 전 소송을 취하해야 금감원의 분쟁조정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DLF 사태 당시 최고 배상비율은 80%였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진행한 투자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홍콩 H지수 ELS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H지수 ELS 가입자(피해자) 모임’은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안이 발표된 직후 입장문을 통해 “모든 것을 법대로 규정대로 적용하고 실행하면 상품 계약은 원천 무효화로 결론이 도출된다”며 “금융기관이 홍콩H지수 ELS 상품을 피해자들에게 판매할 당시 은행법,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법령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에 합당한 배상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지난 11일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잠정) 및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뒤 기자 브리핑에서 “배상과 분쟁조정 관련해서는 신속하게 대표사례에 대한 분조위 개최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