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이 휠체어 밀었던 美 참전용사, 97세로 별세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오찬에서 랄프 퍼켓(왼쪽부터) 예비역 육군 대령,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 고(故)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의 조카인 조셉 로페즈에게 태극 무공훈장 증서를 수여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미국 명예 훈장을 수훈한 참전 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8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 국립보병박물관은 퍼켓 대령이 이날 조지아주 콜럼버스에 있는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1926년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23세에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퍼켓 당시 중위는 일본에서 창설된 제8 레인저 중대 지휘관으로 임명돼 부산으로 파견됐다.

같은 해 9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했고 제8 레인저 중대는 북한군을 38선 너머까지 후퇴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때부터 퍼켓은 북진 작전을 진두지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 11월에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 과정에서 중공군에 맞서 맹렬히 싸웠다. 이때 그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려 적의 총격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레인저 대원과 함께 고지 앞으로 나아가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기관총 사격을 가하기 위해 열린 공간을 가로질러 달려가겠다고 자원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500여 명의 중공군이 6차례에 걸쳐 반격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박격포와 수류탄 파편에 발과 엉덩이 등을 다쳐 움직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레인저 대원들이 그의 ‘명령’을 어기고 그를 구출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퍼켓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냉전기 독일에서 제10 특수부대를 지휘하며 육해공 비밀 침투 작전을 이끄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1971년 전역했다.

퍼켓 대령은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훈격인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수훈식에는 방미 중이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도 참석했다.

미 군사전문매체 밀리터리닷컴은 퍼켓 대령의 이날 별세로 이제 한국전쟁에 참전한 공으로 명예훈장을 받은 생존자는 남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퍼켓 대령에 앞서 2022년 11월 29일 명예훈장 수훈자 미야무라 히로시 예비역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퍼켓 대령은 작년 4월에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 참석한 퍼켓 대령의 휠체어를 직접 밀면서 함께 무대로 나아가 그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줬다. 대통령이 외국방문 중 현지에서 무공훈장을 수여한 건 당시가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퍼켓 대령은 이밖에도 22년간의 군복무 기간 수훈십자훈장과 2개의 은성무공훈장, 2개의 동성무공훈장, 5개의 퍼플 하트 훈장 등을 받아 미 육군 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고 NYT는 전했다.

수훈십자훈장은 명예훈장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이다. 은성·동성무공훈장은 전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군인에게, 퍼플 하트 훈장은 전장에서 부상하거나 사망한 군인에게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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