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배우는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하기 때문에 계속 하다보면 '비슷한 연기'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특히 코미디 연기는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배역마다 개성있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있다. 기존 연기 틀에 빠지지 않고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해내 매번 다른 연기를 펼치는 배우, 안재홍(38)이다.
안재홍이 ‘마스크걸’의 주오남 캐릭터에 이어 넷플릭스 ‘닭강정’(감독 이병헌)의 ‘고백중’ 역으로 또 한 번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고백중(안재홍)의 신계(鷄)념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고백중이라는 캐릭터가 돋보이고, 캐리커처처럼 느껴졌다. 모든 캐릭터가 다 이상하고 사랑스런 느낌이기는 했다. 고백중은 원작인 웹툰에서 튀어나온듯한 만화적인 인물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나는 자연스런 연기를 추구하면서 그안의 캐릭터성을 갖추고 싶었다."
안재홍은 "이 작품은 스트레이트한 대사 맛을 충실히 살리고 싶었다. 액션도 연극이나 만화처럼 했다. 그것은 나에게 도전이었다"면서 "이전에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었다. 톤과 화법을 구축해 흔들리지 않게 나아가야 했다. 그래야 시청자가 이 안에 들어가 본 적 없는 마성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안재홍은 ‘닭강정’에서 원색, 단색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개나리 색깔 같은 '옐로 팬츠' 착장을 하고 나타난다. 그는 "이 작품은 노란 색을 해도 편안한 베이지 색깔을 하면 안된다. 개나리 색깔을 굳게 믿어야 한다"면서 "황당무괴한 이야기속 인물들의 옷차림(코스튬)에서 서사가 부여되므로 이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안재홍에게 어떻게 매번 다른 연기를 펼치는게 가능한지를 물어봤다.
"'LTNS'를 촬영할 때는 마음은 연기하지 않은듯한 연기를 펼치며 사실적 감흥을 주려고 했다. 최대한 연기하는 듯함을 덜어냈다. '닭강정'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연기하는 듯한 모습이 더 잘 보이도록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를 꽃피워내야 한다. '고백중'을 연기하면서 연극적이고 만화적인 느낌을 줘 재미있도록 하려고 했다."
안재홍이 기업 면접보는 신은 압권이다. 거의 랩을 하듯이 리듬을 타면서 면접관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한다. 안재홍은 "면접관에게 전혀 잘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이후 '닭강정'의 유래에 관련된 대사는 롱테이크로 한 화면에 담겼다. 이렇게 긴 대사를 한번에 소화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안재홍은 리얼한 연기를 위해 유승룡과 리허설을 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환상의 티키타카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는 "전체 리딩을 하기 전에 감독과 소규모로 읽어보면서 이 작품에 걸맞는 화법이 구현되어야 함을 공유했다. 유승룡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의 톤을 만들어오셨다"면서 "본래 여러번 리허설을 하는데, 처음이 주는 신선함을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아 리허설을 아꼈다. 본 촬영에 들어갔을 때 처음이 주는 쾌감 형성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시켰다. 순간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선배와 춤을 추듯 연기했는데, 호흡이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재홍의 전 여자친구로 출연한 정호연(홍차 역)과의 호흡도 기가 막힐 정도였다. 정호연은 짧은 시간 출연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안재홍은 "정호연과는 첫 만남이었고 대사 자체가 너무 웃겼는데, 정호연이 카리스마를 뿜어냈다"고 전했다.
안재홍은 기타를 들고 노래도 하면서 '닭강정' OST에 참가했다. 가사는 B급인데 고퀄 멜로디다. 한마디로 그럴듯하다.
이병헌 감독의 '닭강정'은 재미있지만 정교해야 한다. 정확하고 세밀한 연기가 가미되어야 시너지가 나온다.
"이병헌 감독의 시나리오는 다양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다. 재미있는 대사지만, 웃기려고만 한 대사 는 하나도 없다. 곱씹어보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하나의 말들이 단서요, 맥거핀이다. 어디까지 생각하고 만드는지 가늠이 안된다. 감독님은 배우를 가둬두면 코미디가 안된다는 걸 알고, 배우를 뛰놀게 만들어준다."
'닭강정'은 수작 또는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작 웹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기존 시리즈물과 확실하게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창의적인 콘텐츠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반응이 매우 좋다. 미국판 성우는 '마스크걸'의 주오남을 연기했던 사람이 맡아, 고백중의 톤의 잘 살려냈다는 평가.
안재홍은 "새로운 시도와 뭔가 만들어낸다는 게 컸다. 도전해보고픈 장르였다. 맛있고 새로운 게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더 잘해내고 싶고, 다양해지고, 진실되고 싶다"고 말했다.
안재홍은 마동석처럼 안재홍 장르가 생겼다. 이 말에 대해 "영광스런 극찬"이라고 말하는 안재홍의 차기작은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