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변호사와 의뢰인이 맺은 보수약정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무보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위임약정은 유효하므로 법원이 정한 보수액이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서경환)는 A법무법인이 의뢰인을 상대로 “보수 약정금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1심과 2심은 A법무법인 측 패소로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원심(2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니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의뢰인들은 북한주민이었다. 이들은 2013년 4월, A법무법인과 위임 약정을 맺었다. 남한에 거주하던 부모가 사망하며 상속이 개시됐기 때문이었다. A법무법인은 의뢰인을 대리해 국내에서 상속재산 분할 심판 청구, 친생자 존부 확인 소송 등을 제기했고 그 결과 의뢰인들은 196억원 상당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갈등은 의뢰인들이 A법무법인에게 보수약정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당초 이들은 총 상속지분의 30%를 성공보수로 A법무법인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의뢰인들은 “해당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보수약정 지급을 거부했다. 결국 A법무법인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A법무법인 측 패소로 판결했다. 남북가족특례법이 판단 근거였다. 이 법은 북한주민이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고 상속·유증재산 등에 관해 한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 26민사부(부장 허명산)는 지난해 1월, A법무법인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남북가족특례법에 따라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고 북한주민이 직접 한 상속재산에 관한 법률행위는 무효”라며 “북한주민이 아무런 제한 없이 남한 내 상속재산 등에 관해 법률행위를 적법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해당 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A법무법인이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22민사부(부장 심담)는 지난해 10월,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도 남북가족특례법에 따라 해당 보수약정은 무효가 되는 게 맞다고 했다. 다만 대법원은 양측이 맺은 약정을 보수약정과 위임약정으로 나눈 뒤 위임약정은 유효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보수약정이 무효라고 해서 곧바로 위임약정이 무상의 계약이 된다고 단정할 순 없다”며 “단지 보수 지급에 관해 명시적인 약정이 없는 경우에 해당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양측이 응분의 보수를 지급할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주민인 피고들도 A법무법인에게 어느 정도의 보수를 지급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일 뿐 아니라 남한 내 상속재산을 회복하기 위해선 위임계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결국 보수약정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양 당사자는 위임계약을 체결·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보수액은 사건 수임의 경위, 경과와 난이도, 소송물 가액, 승소로 인해 당사자가 얻는 구체적 이익, 양측의 관계 등을 참작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