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산병원 소속 교수들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이날 휴진과 의대 정원 증원 반대 이유를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가운데 건너편에서 한 환자가 이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정부가 행정명령 유보에 이어 의대 모집인원 자율 조정을 발표하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지만, 의사단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의사단체는 의대 증원 무효화와 원점 재검토를 진전으로 보고 있다. 내부 균열 조짐 속에서도 정부 정책에는 한뜻으로 맞서는 분위기다.
5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의료 개혁의 성공을 위해 의대 증원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지금의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내년도 의대 모집정원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5학년도에 한해 증원분의 50~100%를 대학별로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게 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빚어진 ‘의료 공백’을 해소하고자 한발 물러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 정지도 ‘유연한 처분’ 방침에 따라 계속 미루고 있다. 사직과 휴진에 나선 의대 교수들에 대해서도 행정명령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은 증원 백지화 이후 원점 재검토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달 취임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연일 강도 높은 표현으로 증원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임 회장은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세미나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절대로 필수·지역의료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며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역시 의료 현장과 교육 현장을 제대로 반영 못 한 것으로 정원 확대나 정책 패키지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일 취임사에서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의료농단’이라고 날을 세웠다.
의대 교수들이 개별 휴진에 나선 가운데 전의교협과는 별개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오는 10일 전국적 휴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 1주일간 집단 휴진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임현택(왼쪽 첫번째)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미래 의료를 책임질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도 정책 백지화 요구에 변함이 없다. 최근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긴급 심포지엄에서 이 병원 전공의 대표와 학생 대표는 대전협과 의대협이 기존에 내세운 요구 조건을 재차 강조했다.
정부 대응 과정에서 임 회장과 대립각을 세운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강경한 입장이다. 그는 임 회장이 정부와 대화를 위해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함한 범의료계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히자 “대전협이나 의대협은 임 회장과 해당 사안을 논의한 바 없다”며 “임 회장의 독단적인 행동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정부의 각종 행정명령에 대응하고자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소송 제기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진료유지명령은 전공의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행정 명령은 과도하고 부당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취소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전의교협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사법부 요구에 충실히 따를 것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촉구하면서 “국내외 전문가 30∼50명을 모아 정부 자료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검증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