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호 기자] 최근 고난이도·고분쟁성 사건은 급증한 반면 법관·검사 숫자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재판·수사 지연은 수치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16일 헤럴드경제가 법원행정처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민사합의 사건처리기간은 473.4일로, 지난 2017년 293.3일에 비해 약 61.4%나 증가했다. 형사합의 사건처리기간은 38.2%(150.8일→208.4일), 형사단독(고단) 사건처리기간은 40.2%(128.2일→179.8일) 늘었다.
또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민·형사 미제사건 수(소액 제외)는 2017년 24만 3524건에서 지난해 31만 3269건으로 6년간 약 28.6% 늘었다. 2년이 넘도록 1심 판결이 나지 않은 장기미제사건 수는 2017년 8712건에서 지난해 2만761건으로 2.38배 급증했다.
재판 및 수사 지연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자료가 많거나 쟁점이 복잡한 ‘고난이도·고분쟁성’ 사건이 늘어 법관과 검찰의 업무량이 폭증한 점이다. 하나의 사건에도 여러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법원에 제출되는 준비서면, 추가서면, 증거자료 등의 분량도 급격히 늘엇다. 최근 1심 결과가 선고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의 경우 공판기록만 40권(약 2만페이지), 증거기록은 130권(약 6만5000페이지)에 달한다.
사건기록 면수로 봐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기록 평균면수는 2014년 176.6쪽에서 2019년 377쪽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첨부문서를 제외한 1심 판결서 면수를 2017년과 2022년 비교해보면 민사합의는 10.70면에서 12.96면, 민사단독은 5.14면에서 5.32면으로 각각 늘었고 형사합의는 10.06면에서 10.86면으로, 형사단독(고단)은 4.47면에서 4.87면으로 증가했다.
기술유출 사건의 경우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기소한 기술 유출 기소 건수는 82건을 기록, 40건이던 2018년에 비해 5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해외로 유출된 국내 기술은 112건으로 전체 피해액이 26조931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기술 유출 사건은 구체적인 혐의 입증이 어려워 지난해 기소된 82건 중 불구속이 49건, 약식 처분이 18건이나 되는 대표적인 고난이도 사건이다.
이에 비해 2014년 개정된 검사정원법에 따라 검사 정원은 2292명으로 정해져 있다.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원을 늘리고 싶어도 검사 정원이 국회법으로 규제받고 있는 것이다. 각 지청에서 기술 유출 관련 수사를 맡은 검사는 62명으로, 전체 정원의 2.7%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만 증원과 함께 저연차 검사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0년 차 이하 퇴직 검사 인원은 2019부터 2021년까지 각각 19명, 21명, 22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2022년 41명, 지난해 39명으로 약 두 배 가량 늘어났다. 이에 따라 검찰은 올해 역대 최대규모의 경력검사 선발과 신규검사 임용을 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