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그 너머 또 다른 카프카를 만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사진)가 죽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으로 마흔. 그런데 그가 스물아홉살에 쓴 소설 ‘변신’은 무려 한 세기 동안 카프카 하면 으레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이 됐다. 어느 날 아침 끔찍한 벌레로 변해버린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가 한 평생 천착한 ‘카프카적 인간’의 전형. 그 인간을 한 마디로 딱 잘라 정의하기란 여전히 어렵지만, 그의 소설을 인상 깊게 읽어본 독자라면 안다.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치여 인간이 고작 이런 것인가 싶어지는 순간, 어렴풋하게, 그러나 동시에 선명해지는 존재의 의미가 바로 카프카적 인간이라는 것을….

6월 3일은 카프카가 타계한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그의 삶과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책들이 출간됐다. ‘프란츠 카프카: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도 그중 하나다. ‘위대한 작가’라는 카프카의 명성에 가려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카프카를 바라본 점이 흥미롭다. 그의 소설 전반에 깔린 억압적인 긴장감과 나약한 등장인물은 알고 보면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카프카 자신의 무능감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그중 대표적이다.

카프카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가정의 폭군’이었으며, 우울증에 시달린 어머니는 ‘남편에게 맞설 수 있던 여자’가 아니었다. 카프카는 아버지 요구대로 법학을 선택해야 했고, 여동생의 남편이 차린 석면 공장에 공동 경영자로 참여해야 했다. 현실의 한계를 직시한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문학이었다. 실제로 아버지를 향한 감정의 증언은 그가 쓴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도 꾹꾹 눌러 담겨있다.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가 갖고 계신 저에 대한 총체적 판단은 결국, 비록 저를 완전히 부도덕하거나 악의적인 사람으로 깔아보실지라도, 그저 냉담하고 서먹하고 불손한 존재일 뿐일 겁니다. (중략) 감히 말씀드리건대, 전 아주 순종적인 아이가 됐지만 제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최고의 권력이 저를 침대에서 꺼내 발코니로 끌고 나가는 고통스러운 환상에 시달렸고, 이는 제가 아버지에게 아무 의미조차 없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은 그동안 조명되지 않은 그림 그리는 카프카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프카에게 단어와 이미지는 서로 연결된 존재였다. 훗날 카프카도 미술에 관심을 가진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그림들은 그 시절 내게 무엇보다 큰 만족감을 주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까지 세상에 알려진 그의 그림은 40여 점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 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이 10년에 걸친 법정 다툼에서 승소하면서, 개인이 비공개로 소장한 카프카의 그림 100여 점이 2019년 모두 공개됐다. 글이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등장한 카프카의 그림을 조명하는 평론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단 몇 획의 간단한 붓질로만 강렬하게 표현한 카프카의 그림은 어떤 정형화된 미술 양식으로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이다. 그의 그림은 낙서도 아닌 것이 글에 딸려오는 삽화도 아니다. 세부는 비었고, 형태는 불완전하고, 그저 암시할 뿐이다. ‘인간의 동작’으로 보이는 모호한 흔적만이 그 자체로 솟구치는 장면에 가깝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낱낱이 찢고 파괴하는 그의 소설 속 서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이 책 편저자인 안드레아스 킬허는 카프카의 그림에 대해 “이미지 없는 이미지”라고 압축해 표현했다.

카프카의 미완성 유작 ‘실종자’를 만날 수 있는 ‘디 에센셜: 프란츠 카프카’도 매력적인 책이다. 실종자는 유품에서 발견된 모든 것을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 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에도 친구인 막스 브로트가 보관하고 있다가 출판한 카프카의 장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끝이 절망인지 희망인지 알 수 없는데,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미완성 단편들과 그의 일기가 이 책에 함께 실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열일곱 살의 카를 로스만은 가난한 부모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졌다. 그를 유혹한 하녀가 아이를 낳아서였다.” 실종자의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이다. 그래서 카를은 미국 산업사회에서 끝내 사라진 걸까,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걸까. 결말의 선택은 마침내 책장을 덮고난 독자의 몫이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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