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가게 자판기.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유튜브 화면 갈무리]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어떻게 빚을 갚을지 걱정이에요.”
도쿄에서 소바 가게를 운영하는 요시히로 세리자와씨는 얼마 전 자판기에 약 1만9000달러(약 2600만원)을 썼다. 20년만에 일본이 새 지폐를 발행하면서 새 자판기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세리자와씨 가게에서 파는 튀김 소바 가격은 고작 약 3달러(약 4100원). 6300그릇 이상을 팔아야 자판기 비용을 메울 수 있다.
일본 신권 지폐 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 안 그래도 물가가 올라 부담이 큰 상황에서 자판기까지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새 지폐가 일본 중소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며 “최근 일본은 저성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기 침체에 빠졌다”고 전했다.
현금 사용률이 높은 일본에서는 자판기가 일반적인 결제 수단이다. 직원 고용을 하지 않고 직접 손님이 주문할 수 있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닛케이 컴퍼스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만 410만대의 자판기가 운영 중이다. 하지만 오는 7월 3일 신권 발행으로 1만·5000·1000엔짜리 지폐 인물과 디자인이 교체되면 이 자판기들은 쓸모없게 된다.
라멘가게 자판기. [유튜브 화면 갈무리] |
특히 자판기에 의존했던 라멘 가게는 신권 발행으로 인한 타격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 음식 대표주자로 꼽히는 라멘은 이윤이 적어 가게 주인들이 비싼 자판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라멘집을 운영하는 니시타니 히로시씨는 NYT에 “자판기 사용에 문제가 없다”며 새 자판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표했다. 결국 니시타니씨는 신용카드 결제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결제 기계 사용으로 더 많은 관리 비용을 낼 수 있다. 익숙해질 수 없다”고 호소했다.
주 재료인 밀가루와 돼지고기 가격도 오른 상황이다. TV 아사히는 최근 일본 유명 라멘 가게들이 물가를 견디지 못하고 가격을 인상했다고 보도했다. 도쿄 유명 라멘가게 ‘스태미나 라멘 스즈키’의 경우 최근 라멘한 그릇 가격을 20엔 올렸다. 라멘 한 그릇에 약 150g의 돼지고기가 들어가는데, 수입 돼지고기 가격이 1kg에 1020엔(8900원)으로 뛰면서 원가 상승을 감당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게 사장은 “라멘에 들어가는 돼지비계, 목살도 덩달아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서민 음식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라멘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1000엔(약 8700원)’이라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NYT는 “고객들이 가격 인상에 익숙하지 않아 기업들은 라면 가격 인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들이 자판기 구매를 꺼리면서 기계 교체가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자판기 비용 부담으로 2021년에 도입된 500엔 동전을 수용할 수 있는 음료 자판기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30%에 불과했다.
한편 일본 대표 음식인 라멘 가게는 각종 비용 인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도쿄쇼코리서치 조사 결과 지난해 전국 라면집 45곳이 파산 신청을 했다. 이는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