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평가한 일·가정 양립 영역 부문 전체 41개국 가운데 5위다. 해당 평가에서 10점 만점에 8.3점을 받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같은 평가에서 3.8점을 얻어 뒤에서 7위(35위)다. 두 나라 간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나라 사이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시간 선택제 근로자’ 비중이다. 지난 2022년 기준 네덜란드 전체 근로자의 35%이상이 ‘자발적’으로 시간 선택제 근로를 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근로자 중 시간제로 일하는 이는 16.4%에 그친다. 우리나라 시간제 근로자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인데 비해 네덜란드 시간제 근로자는 모두 ‘정규직’이라는 점도 다른 점이다.
네덜란드 시간제 근로자는 ‘동등대우법’에 의해 정규직과 동일한 조건에서 일한다. 고용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회만 있다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전일제’로 일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시간제’ 근로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네덜란드 중부 위트레흐트주의 도시 뢰스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AFAS. 일하기 좋은 기업(GWP)을 선정해 발표하는 미국 컨설팅 업체인 GPTW가 3년 연속 우수 기업으로 선정한 정보통신(IT)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이다. ERP·HR 등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이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700명 가량이다. 이 중 시간제 근로자는 총 170여명으로 전체의 약 25%에 달한다.
시간제 근로자는 대부분 주당 32시간을 일하고, 그보다 더 적게 일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우리와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안정성을 보장받는다는 점이다.
모두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항이다. 네덜란드는 지난 1996년 ‘노동시간법’을 도입해 최대 근로시간, 야간·주간 근무, 분야별 근로시간 관련 의무사항 등 근로시간 관련 근로자의 권리를 법제화했다. 1996년 시행한 ‘동등대우법’에 따르면 전일제와 시간제 간 근로조건 차별을 금지토록 규정하고 있다. 2000년엔 ‘노동시간조정법’이 발표돼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는 근로기간 1년 이상, 4개월 전 근로시간조정 요청 등 일부 조건 충족 시 기존 계약상 명시된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됐다. 2016년엔 ‘유연근무법’이 시행되면서 ‘장소’까지 포함해 최소 6개월, 최소 2개월 전 신청하면 ‘1년 1회’ 장소와 시간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법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기준일 뿐 현재 네덜란드 기업 대다수는 시간제 근로자에 ‘법 이상’의 혜택을 준다. 지난 11일(현지시간) AFAS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바스 반 더 벨트는 “법에선 근로시간과 장소에 대한 조정이 1년에 한번 가능토록 돼 있지만, 우리는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 이런 ‘유연근무제’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40여년 전인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80년대 초반 몰아닥친 경제위기로 ‘네덜란드병’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경제가 악화했다. 노조는 높은 임금 인상률을 주장했고, 기업들은 사람을 뽑지 않아 실업률이 급증했다.
네덜란드병을 극복하기 위해 노사는 1982년 이른바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하고, ▷임금동결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고용 도입에 합의해냈다. 우리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네덜란드 사회경제위원회(SER)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간 이해관계를 조율해냈다.
예룬 피서 SER 연구원은 “바세나르 협약은 종이 한 장짜리에 ‘임금 인상 억제’, ‘일자리 재분배’라는 딱 두 개 내용이 담겼다”며 “이를 계기로 임금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끊기고, 취업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무엇보다 근로시간이 확 짧아졌다”고 설명했다. 바세나르 협약 체결 이후 시간제 고용이 정착하기까지는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작점’은 30여년 전인 지난 1993년 정비된 ‘시간제 최저임금 및 연차휴가 적용 등 법적 지위 강화에 관한 제도’다.
시간제로 일해도 전일제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동등대우법이 시행된 1996년 이후 시간제를 택하는 이들이 늘었고, 2022년 기준 네덜란드 임금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실제 네덜란드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361시간으로 OECD 평균(1719시간)과 비교해 크게 낮고, 우리나라(1904시간)보다는 무려 543시간 적다.
네덜란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했던 지난 2022년에는 재택근무를 근로자의 권리로 인정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원격근무를 도입한 고용주에 사회보장기여금을 감면하고, 고용주가 지불한 원격근로자의 인터넷·전화비용 등에 세제 혜택을 지원토록 했다. 이 덕분에 네덜란드 재택근무 활용률은 48.5%로 전세계 1위다. 우리나라(4.4%)는 물론 유럽연합(EU) 평균 20%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네덜란드 기업들은 재택근무에 더해 주 4일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AFAS 바스 반 더 벨트 CEO는 “내년 1월부터 우리 회사는 주 4일제를 시행한다”며 “4일 근무하고 5일 근무와 같은 급여를 지급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헤이그·뢰스던=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