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영국 노동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가 지지자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날 치러진 영국 총선이 제1야당인 노동당이 압승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4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총선이 제1야당인 노동당이 압승을 거뒀다. 보수당 정권 14년간 영국 경제가 추락하고,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보수당을 향한 심판론이 거셌다.
AP통신은 출구조사 직후 "보수당에 대한 분노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노동당 압승이 예고됐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유럽연합(EU)과 오랜 협상을 거치며 혼란을 겪었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는 급등했고 재정 압박 속에 공공서비스는 악화했으며 이주민은 사상 최다로 급증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5월 말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영국의 현재 상태가 2010년보다 나쁘다고 답했다.
상태가 14년 만에 악화했다고 보는 분야도 광범위했는데 생계비용(85%), 공공의료인 국민보건서비스(NHS·84%), 이민 제도(78%), 경제(78%), 주거(72%), 치안(71%)이 나빠졌다는 여론이 특히 거셌다.
민심 이반에 따른 보수당 심판론이 일찌감치 확산한 가운데 리시 수낵 총리가 지난 5월 22일 7월4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극적 반전은 없었고 수낵 총리의 '정치적 도박'은 실패로 끝났다.
영국민이 총선을 앞두고 결정에 고려할 최대 현안으로 꼽은 것은 경제와 물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장률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중간 정도지만, 코로나19 이후 회복 속도가 더뎠다. 2019년 말 대비 영국 경제는 1.8% 성장해 G7 중 두 번째로 낮았다.
브렉시트와 경제 불확실성 속에 투자가 줄었다. 싱크탱크 공공정책연구소(IPPR)에 따르면 민간 투자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G7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서민층이 가장 큰 문제로 호소하는 것은 생활물가 급등이다.
2022년 10월 물가 상승률이 연 11.1%에 이르렀고 기준금리는 16년 만의 최대 수준인 연 5.25%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들어 물가 상승이 둔화했으나 식품 가격은 2022년 초보다 여전히 25% 높은 수준이다.
수낵 총리는 선거 기간 내내 "보수당은 감세하고 노동당은 증세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으나 이 역시 먹혀들지 않았다.
3일(현지시간) 영국 노동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오른쪽)가 지지자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날 치러진 영국 총선이 제1야당인 노동당이 압승했다. [로이터] |
이미 보수당 집권 기간 조세 부담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에 따르면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1948년 이후 7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수당이 추진한 정책 중 최악은 공공의료가 꼽힌다. 가장 큰 위기에 닥친 것은 공공의료인 국민보건서비스(NHS)다. 응급치료부터 진료, 진단, 수술까지 긴 대기시간으로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고질적인 인력·자원 부족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히 악화해 병원 진료에 대기중인 환자가 750만명에 이른다.
국가사회연구소(NatCen)의 '영국 사회 태도 조사' 결과 NHS에 만족한다는 응답률은 24%로, 2020년보다 29%포인트 급락했다.
합법 이주민이 늘면서 영국으로의 이민 순유입은 2022년 74만5천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2019년 18만4천명에서 급증한 것이며 2023년 68만5천명으로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불법 이주민은 그보다 수는 훨씬 적지만, 사회적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등지에서 EU 회원국인 프랑스로 들어왔다가 다시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온다.
2022년 4만5천755명으로 최다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2만9천437명으로 다소 줄었으나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만3천여 명으로 지난해나 2022년 동기보다 많다. 2018년 이후 거의 12만명이 이 루트를 통해 영국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