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SBS 금토드라마 ‘커넥션’은 우정의 참 의미를 묻는 드라마였다. 우정은 우정 그대로 남아있어야 아름답다. 하지만 우정의 순수성이 지켜지지 못하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변질된 우정의 끝은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우정에 집착하면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돈과 욕심이 끼어들면, 그 때부터는 더 이상 우정이 아니니까. 변질된 우정이 허다하잖아. 그런 건 우정이 아니고 커넥션.”
제작진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많은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를 이어갔다. 한 가지로 집중시키는 데에는 불리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을만했다. 다음은 이현 작가와 김문교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마약범죄를 잡고 있는 수사경찰이 마약에 중독되는 등 전형적인 수사물이 아니어서 범죄 추리도 예상하기 어렵고,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섞여버릴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강한 몰입도가 생겼어요. 이를 의도하고 정교하게 만드신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말씀을 해주세요.
▶이현 작가=드라마 속 절대악의 존재는 이야기를 선명하게 만들지만 단순해지기 쉽습니다. 그 악을 처단하는 과정은 종종 ’사이다‘나 ’참교육‘과 같은 단어로 집약되지요.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늘 혼재해 있어서 한 사람의 말만 들어서는 잘잘못을 가리기 어렵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저 또한 ’커넥션‘의 몰입도는 이러한 현실의 반영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절대적인 악을 찾기 어렵고, 그래서 모호하다고 느껴지지만, 그 가운데도 무언가 선함을 끝내 찾아내려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몰입의 원천이었겠지요.
요즘 들어 악인에게 서사를 주는 것을 불편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하지만, 이를 외면하면 절대악만 그리게 되고, 그럼 드라마가 통쾌하기는 해도 생각해볼 지점은 없어진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모두에게 겹치지 않는 서사를 부여하려고 애썼습니다. 캐릭터가 분명하게 잡히면, 그 뒤에는 각각의 인물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선택을 이어가니까요.
그래서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냥 흘려 지나가는 캐릭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물도 자신의 분명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씬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당연하고도 기대되는 일이었습니다. 빛나는 연기를 해주신 조연 배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문교 감독=사실 이 모든 설계는 작가님 안에 준비돼있던 것이었기 때문에 저 역시 대본이 나올 때마다 첫 번째 독자로서 몰입해서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정교한 플롯을 영상화했을 때, 그 정교함이 주는 매력을 잃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려가 있었고, 그 탓에 작가님께 자주 복잡한 부분을 간소화해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 요청들이 때론 불편하고, 불필요하다 느끼실 때도 있었을텐데 항상 너른 태도로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신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성 전미도 권율 등 주인공은 물론이고 분량이 덜한 인물들까지 많은 캐릭터를 살려내는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김문교 감독=좋은 대본을 뛰어난 배우들이 연기했기 때문에 특별히 제가 캐릭터를 살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배우에게 대본이 가면, 이 문제의 9할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연출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나머지 1할을 현장에서 조율하려고 노력했는데, 거기서 자주 도움을 받은 것은 배우들의 자유로운 해석이었습니다. 꽉 짜여진 틀에 배우를 맞추기보다 배우의 개성과 창조적 해석이 첨가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조금의 자유도가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커넥션’ 시청자 호평 반응과 흥행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이현 작가=드라마는 작품성만큼이나 상업성과 대중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정’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지만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물의 특성상 많은 대중분들께서 공감하고 좋아하실지 저도 기대반 걱정반이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결과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전부터 좋아하셨던 분들은 물론이고 평소 즐겨보지 않으셨던 분들까지 ‘커넥션’을 몰입해 보셨다는 말씀을 듣고, 놀랍기도,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시청자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문교 감독=첫 방송이 나가고 한 달 반 정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신 덕분에 꽤 기분 좋은 고양감 속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함께한 분들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 그 점이 가장 기쁘고 감사합니다. 작가님과 배우들은 물론이고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줬습니다. ‘커넥션’은 촬영부터 방송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했던 탓에 육체적으로 고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도 쉽고 편한 길 대신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아줬던 배우, 제작진들에게 자주 놀라고 자극받았습니다. 시청자분들이 저희 동료들의 노력을 알아주실 때마다 짜릿하고 행복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커넥션’ 연출(집필)에 있어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현 작가=주제를 잘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마약 드라마로만 비춰지는 것도 원하는 바가 아니고, 그렇다고 시청자들에게 억지로 주제의식을 강요해서도 안되었기 때문에 인물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마다의 우정’이라는 키워드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김문교 감독=’커넥션’ 대본이 가진 매력을 TV라는 매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마약이나 폭력 등 자극적인 소재를 어느 정도의 수위로 표현해야할지, 또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를 어느 정도 친절한 방식으로 설명할지에 대해 자주 고민했습니다.
상황 자체는 자극적으로 만들되 적게 보여주자, 때로 세련되어 보이지 않더라도 최대한 이야기의 전체를 이해하게 하자, 라는 결론에 닿기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해주셨습니다. 어쩌면 훌륭한 동료들의 좋은 의견을 잘 받아들이려고 애쓴 것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성-전미도-권율-김경남-정순원-정유민-차엽-이강욱 등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이현 작가=인물의 입체성은 인물의 현실성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넥션 속 인물들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입체적이고 동시에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아무리 인물의 입체성을 설정하고 복잡한 심리를 대본에 옮겨도, 연기자가 그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번 드라마 속 연기자분들의 캐릭터 표현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때때로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캐릭터의 또 다른 면모까지 연기하시는 모습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연기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문교 감독=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이렇게 성격도 좋다고? ‘커넥션’에 출연한 배우들의 공통점은 딱 이 세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예술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행복했고, 그 훌륭함이 행여 저의 실수로 소실될까 불안했습니다. 대본에 대해, 연기에 대해, 예술에 대해, 나아가 인간에 대해 정말 깊은 이해를 가진 분들의 동료로 일할 수 있었단 점이 큰 영광이었습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고 감정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현장에서 제가 느낀 감동에 대해 거의 표현을 못했습니다. 배우들의 의문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변해주지 못한 순간도 꽤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배우들은 항상 저를 믿고 제 선택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땐 그 신뢰가 마냥 감사했고 아주 조금은 의아한 부분도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스스로의 심지가 굳은 분들이기 때문에 그 신뢰를 저에게도 나눠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커넥션’의 순간들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이들 덕에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은 것 같고, 그 성장을 보여줄 수 있도록 꼭 이 배우들과 다시 한 번 작업하고 싶습니다.
-’커넥션’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었이었나요?
▶이현 작가=핵심 메시지는 ‘우정’의 다면성과 소중함입니다. 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중간 어딘가의 관계가 우정이잖아요. 그래서 깨지기 쉽고 변하기도 쉬운 이 ‘우정’을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순수하게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김문교 감독=조금 쑥스럽지만 ‘커넥션’이란 작품의 제작에 참여하는 동안, 그리고 시청자의 마음으로 다시 방송분을 보는 동안, 돌아간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남긴 말 한 마디가 자주 생각났습니다. ‘시는, 패배를 말하는 시까지도, 패배주의에 반대한다.’는 문장입니다.
‘커넥션’은 인간이 인간에게 잔인하게 구는 장면이 꽤 나오기도 하고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자주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작품 속 인물의 말로가 대체로 좋지 않고, 우정이란 긍정적 가치의 이면을 자꾸 들춰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가님이 이 대본을 통해 하고자 했던 일은 그 씁쓸하고 어두운 면을 짚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두운 면 너머에서 인간이 지켜내야 할 무엇을 발견하는 데에 있었다고 믿습니다. 시청자분들이 커넥션을 어둡고 쓸쓸한 드라마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둡고 씁쓸한 것들 사이에서 힘들게 건져낸 반짝이는 것의 가치를 함께 발견하고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