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씩 일한 후 김정은 지도 내용 공부”…北 강제노동 실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4일, '혁명학원체육경기-2024'가 지난 17~23일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대회에는 만경대혁명학원, 강반석혁명학원, 남포혁명학원, 새날혁명학원에서 선발된 1,000여 명의 선수들이 경기에 참가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군에서 8시간 동안 순찰을 하고 나면 4~5시간 정도 추가로 일을 한다. 농사일에 동원되거나 나무를 하러 간다. 자유 시간에는 김정은 지도 내용이나 노동당 10대 원칙과 같은 것을 공부해야 한다. 구금된 느낌이었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는 16일(현지시간)일 발간한 북한 강제노동 보고서에는 북한 당국이 사실상 ‘노예제’ 수준의 강제노동을 자행하고 있는 실태가 담겼다. 2015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북한을 빠져나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중 강제노동 피해를 직접 겪었거나 목격한 이들과의 면담 193건을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구금시설 내 노동 강제 배정 직장 군 징집 강제징집(돌격대) 기타 노동력 동원 해외노동자 등 강제노동 유형을 구분했다.

보고서는 “북한 내 감옥 및 구금 시설은 북한의 경제가 굴러가도록 돕는 강제노동을 대량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수감자들은 작업 할당량을 맞추도록 강요받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식량을 적게 주거나 추운 날 강제로 실외에 서 있게 하는 등의 처벌을 받았다. 앞서 조사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를 통해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관리소) 등에서 “강제노동의 불이행은 즉결 처형, 고문과 굶주림을 약화시키는 배급량의 삭감을 포함한 가혹한 처벌로 이어진다”며 반인도범죄로서의 노예화가 자행되고 있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당국은 학업이나 군 복무를 마친 개인 모두를 직장에 배정하고 그에 따라 거주지를 결정했다. 취업 시에는 사회계급제도인 ‘성분’에 따라 차별이 발생했는데, 국민 개개인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따라 핵심, 동요, 적대 세 계급으로 분류하고, 통치에 위협이 되는 이들은 감시하고 소외시켰다.

뇌물을 주면 국가가 배정하는 직장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돈을 벌 수도 있었다. 한 탈북민은 “보안원이 농장에서 일을 안 하고 뇌물을 주지 않는다고 괴롭혔다. 돈을 안 내면 노동단력대에 보내겠다고 겁을 줬다”고 밝혔다.

북한은 전군복무법(2003년)에 따라 남녀 모두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하고, 남성의 경우 성분에 따라 최장 10년까지 징집됐다.

징집병은 갱도, 터널 공사 등에 동원됐는데 일을 하나 사망하는 등 안전을 위협받았다. 한 탈북민은 “터널 공사에서 옆에 조라 다른 조를 고려하지 않고 폭파시켜서 사고가 나기도 했다”며 “그런 사고에서 죽은 사람은 가까운 산에 묻힌다. 가족은 남편이나 아들이 군 복무 중에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는데 금전적인 보상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조직한 강제노동 동원 제도인 ‘돌격대’ 배치에 대한 기술도 나온다. 돌격대는 ‘고무적으로 생산적이며 열정적인 노동’이라는 표현에서 나온 용어다. 작업은 건설 및 농업 부문에 파견됐다. 돌격대 역시 돈을 낼 수 있으면 동원에서 빠질 수 있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월 11일과 12일에 걸쳐 이틀 동안 삼지연시 건설사업 전반을 현지지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연합]

해외 노동자들은 장시간으로 고된 작업에 시달렸다. 한 탈북민은 “주거 지역 건설 현장에서 일했는데, 여름에는 하루에 17~18시간 일했고, 겨울에는 낮 시간이 짧기 때문에 10시간에서 12시간 일했다”며 “밤 12시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고 휴일은 한 달에 하루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노동자는 거주하는 국가가 아니라 북한 내 국가기관과 연계된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데, 당국이 ‘국가 기여금 및 근무지에서의 생활비’ 명목으로 월급의 80~90%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 탈북민은 “벌이의 60%는 정부로 가고 20%는 식비 등 생활비에 쓰고 나머지는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며 “(생활비 명목의 20%도) 모두 주지 않고 딱 담배와 생필품을 살 정도만 줬다”고 말했다.

해외노동자는 외부 정보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이동의 자유도 제한됐다. 국가보위성 관계자가 거주 시설을 감시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 정부의 첩자가 있을 수 있어 동료와 대화할 때도 조심해야 했다.

한 탈북민은 “처음에 도착했을 때 ‘자본주의’라며 텔레비전도 없고 영화도 볼 수 없었다”며 “한 달에 한 번 편지는 보낼 수 있지만 보위원이 읽고 검열했다”고 밝혔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는 “북한 정부는 국제법에 반하는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철폐하고 북한 내 노동 제도의 구조적 개혁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에 둬야 한다”며 “노예제 및 노예제 유사 관행을 철계하고, 노예제를 형사 범죄로 정의해 범죄의 심각성에 부합하는 제재 조치로 처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보고서 발간을 환영했다. 외교부는 “북한의 강제노동 문제는 심각한 인권 문제인 동시에 주민들의 강제노동을 통해 창출된 수익이 불법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평화·안보와도 동전의 양면처럼 연계된 사안”이라며 “이번 보고서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고, 북한 인권상황의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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