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총리, EU수장 연임 저지 실패에 후폭풍…“고립 자초, 협상력 떨어뜨려”

18일(현지시간) 영국 옥스퍼드 인근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조르지아 멜로니 총리가 찰스 영국 국왕 옆에서 서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진 뒤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대세를 읽지 못하고 외교무대에서 ‘왕따’를 자처해 이탈리아의 입지를 좁혔다는 지적이다.

19일(현지시간) 현지 일간지 일폴리오에 따르면 제2야당인 오성운동(M5S) 대표인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이날 이 매체에 “멜로니 총리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EU와의 협상 가능성을 한꺼번에 잃었다”며 “EU 창립 멤버로서 유럽에서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탈리아가 이제는 변방으로 밀려났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PD) 역시 멜로니 총리가 EU에서 고립되게 됐다며 비난에 가세했다.

로렌초 카스텔라니 로마 루이스 대학 정치학 교수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멜로니가 이끄는 당이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연임 투표에서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EU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을 배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며 “그 결과 이탈리아 정부의 협상력은 극도로 약해졌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의 정치 컨설턴트 기관 ‘폴리시 소나르’(Policy Sonar)는 멜로니 총리의 이번 결정으로 만성적인 공공부채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와 EU 집행위원회의 긴장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4%로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EU는 건전재정 유지와 재정 정책 공조를 위해 회원국의 재정적자가 GDP의 3%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현 집행위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멜로니 총리와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사이가 틀어진 상황에서 ‘폰데어라이엔 2기’ 출범 시 이 문제를 두고 이탈리아와 EU 집행위가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비판에 멜로니 총리는 자신이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 소속 유럽의회 의원들이 폰데어라이엔의 연임에 반대했지만 EU와 협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선택이 EU 집행위에서 우리의 역할을 어떤 식으로든 훼손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며 “이탈리아가 차기 EU 집행위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전날 인준투표에서 전체 719표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긴 401표를 받아 연임을 확정 지었다. FdI 소속 유럽의회 의원 24명이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유럽의회에서 FdI를 대표하는 카를로 피단차 의원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좌파, 특히 녹색당의 지지를 얻기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그를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그의 재선 공약은 (우파가 선전한)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드러난 강력한 변화의 메시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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