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 지휘관을 노려 보복 공습을 단행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현장에 건물 및 차량이 파괴됐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이스라엘군이 축구장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겨냥해 보복 공습을 단행,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의 측근을 살해했다. 헤즈볼라와의 긴장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확전을 원치 않지만 재보복이 있다면 또 다른 강경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전면전 확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30일(현지시간) 오후 단행한 베이루트 공습으로 헤즈볼라 고위급 지휘관이자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군사 고문 역할인 푸아드 슈르크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에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자 작전계획 고문인 푸아드 슈크르를 베이루트 지역에서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사이드 무흐산’으로도 불리는 슈르크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튿날부터 이스라엘 북부를 겨냥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지휘해 왔다고 설명했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하마스와 연대해 이스라엘과 거의 매일 교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 이스라엘 점령지인 골란고원 마즈달 샴스의 축구장을 폭격해 어린이 12명을 숨지게 한 장본인이라며 이번 작전이 보복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헤즈볼라는 자신들의 소행임을 부인했으나 이스라엘은 로켓 파편을 근거로 헤즈볼라를 배후로 지목해 보복을 예고한 바 있다.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골란고원의 마을 마즈달 샴스를 방문해 “이스라엘은 이곳에 대한 공격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며 “우리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라고 말했다.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 지휘관을 노려 보복 공습을 단행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현장에 보안 인력들이 배치됐다. [EPA] |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은 “헤즈볼라의 계속되는 침공과 잔인한 공격 때문에 레바논 국민과 중동 전체가 더 광범위한 상황 악화에 끌려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우리는 확전을 원하지 않고 적대 행위를 해소하기를 선호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어떠한 시나리오에도 완전히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스라엘 매체들은 ‘하지 모흐신’이라는 별칭이 있는 푸아드 슈크르가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폭격 목표물이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일간 하레츠는 그가 1983년 베이루트에 주둔하던 미군 해병대 막사에 폭탄 테러를 자행해 미군 241명이 숨진 사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군이 그에게 현상금 500만달러(약 69억2300만원)를 내걸기도 했다고 전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베이루트 공습이 알려진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헤즈볼라는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적었다.
이날 저녁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남부 외곽 주거지역을 드론으로 공습했다. 이스라엘군이 현재 가자지구 전쟁 국면에서 베이루트의 헤즈볼라 목표물을 직접 겨눈 것은 처음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월 베이루트 외곽의 하마스 사무실을 드론으로 공습해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 알아루리 등 6명을 제거한 바 있다.
미국 CNN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격하기 전 미국에 이를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한 고위 관리는 이번 공습으로 헤즈볼라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며 “우리는 확전을 원치 않지만 이는 헤즈볼라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CNN에 말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을 두고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해 민간인을 살해한 범죄 행위”라고 비난했다.
30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라피크 하리리 국제공항 도착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AP] |
국제사회는 확전을 우려하며 대응에 나섰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성명에서 헤니스플라샤르트 유엔 레바논 특별조정관과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 전쟁 발발을 막고자 레바논과 이스라엘 양측에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린 장피에르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영사국의 레나 비터 차관보는 레바논 주재 미국 국민들에게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떠나야 한다”며 출국을 권고했다. 그는 현지 교통, 통신, 인프라가 온전히 작동하는 지금이 출국 적기라며 이를 놓치면 장기간 머물 레바논 내 은신처를 확보해야 한다고 전했다.
영국과 독일도 자국민들에게 레바논 출국을 권고했다.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무장관은 엑스를 통해 “우리는 영국 국민들에게 레바논을 떠나고 여행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며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바스티안 피셔 독일 외무부 대변인도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레바논을 떠나야 한다”며 “지역적 충돌이 발생하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집트는 외무부 성명으로 확전 위험을 우려하면서 레바논과 미국 정부에 각각 헤즈볼라, 이스라엘에 대한 자제를 촉구해달라고 당부했다.
헤즈볼라와 함께 중동 반서방·반이스라엘 이슬람 무장세력을 이루는 ‘저항의 축’은 한목소리로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에서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레바논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이스라엘 정권의 공격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폭격이 “위험한 긴장 고조 행위”라고 지적했고, 예멘의 후티 반군은 “레바논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