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 포스터[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가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유가족으로부터 음악저작물 이용 허락을 받은 CJ ENM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음저협이 이 작곡가의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지만 저작권을 등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제3자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5-1부(부장 송혜정·김대현·강성훈)는 음저협이 CJ ENM을 상대로 제기한 3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음악저작물의 공연권 등에 대한 양도등록이 마쳐지지 않아 원고(음저협)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작곡가는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 유명 음악을 작곡·작사한 인물이다. 음저협은 작곡가, 작사가 등과 계약을 맺고 음악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을 신탁관리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음악 사용을 원하는 개인, 단체, 기업 등이 음저협과 협상해 사용료를 지불하고, 음저협은 이를 창작자에게 다시 배분하는 구조다. 창작자와 사용자가 직접 계약을 맺을 때 생기는 비효율과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작곡가와 음저협은 1986년 최초로 신탁 계약을 맺었다. 처음에는 저작권 관리를 위임받는데 그쳤지만, 2013년 저작권신탁계약약관이 변경되면서 ‘위탁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3자에게 이용허락 및 권리행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계약에 추가됐다.
CJ ENM과의 갈등은 2017년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막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2008년 2월 이 작곡가가 사망하면서 신탁계약의 주체는 유가족이 됐다. 유가족은 ‘영훈뮤직’이라는 회사를 세워 저작권을 양도했고, CJ ENM은 영훈뮤직과 계약을 맺어 뮤지컬 음악 이용을 허락받았다.
음저협은 신탁계약 내용을 근거로 이 작곡가의 저작재산권 소유자는 음저협이라고 주장했다. CJ ENM이 음저협과 계약을 맺지 않고 무단으로 뮤지컬을 제작해 저작재산권의 일부인 공연권이 침해됐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하라고도 했다. 반면 CJ ENM은 음저협이 저작권 ‘양도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훈뮤직과의 계약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음저협은 600만건이 넘는 곡을 관리하고 있지만 양도 등록을 할 경우 곡당 약 8만원의 비용이 발생해 거의 하지 않고 있다.
1심 재판부는 CJ ENM의 손을 들어줬다. 현행 저작권법 상 저작권을 이전 받았다고 해도 이를 등록하지 않으면 제3자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1심 재판부는 “사건 음악저작물의 공연권 등은 늦어도 2002년 음저협에게 이전됐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도 “음저협에 양도됐다는 취지의 양도등록이 마쳐지지 않았다. 음악저작물에 대한 이용 허락을 받은 CJ ENM에 신탁에 따른 양도로 대항할 수 없다”고 했다.
음저협이 저작권을 이전받아 일반적인 사용료 징수권한 등을 보유한 것은 맞지만, 양도등록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원작자측으로부터 이중으로 권리를 넘겨받은 또다른 양수자의 저작권 이용을 막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이어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으로 등록을 요구하는 취지는 저작권 양도 사실을 공시해 거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 또한 1심 재판부와 같은 취지로 음저협의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유가족이) 저작재산권을 양도한 행위가 신탁계약 약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신탁계약을 해지하거나 (유가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양도계약을 유효한 것으로 본다고 해서 저작권신탁관리제도가 형해화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음저협측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