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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윤호 기자]교통사고를 내고 현장을 이탈한 운전자가 뇌전증 발작으로 사고 당시 기억을 잃은 정황을 인정받아 무죄판결을 받았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광주지법 형사5단독 지혜선 부장판사는 사고 후 미조치(도로교통법), 도주치상(특가법) 등 혐의로 기소된 A(55) 씨에 대해 사고 후 미조치 혐의는 무죄를, 도주치상 혐의는 공소 기각 선고를 내렸다.
A씨는 작년 4월 27일 광주 서구 치평동 한 도로에서 카니발 차량을 운전하다 앞차 모닝의 후미를 들이받고도 구호조치 없이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모닝 차량은 앞으로 밀려나 도로 연석에 부딪혀 전복됐다.
피해차량은 폐차됐고, 운전자는 6주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갈비뼈 골절상을 입었다. 80대 동승자는 깨진 유리에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요양보호사와 돌봄 노인으로 귀가도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사고 직후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뒤늦게 자신의 차량이 파손된 사실을 알았다. 그는 사고 2시간여 만에 경찰에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언제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신고했다.
그는 “뇌전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데, 사고 당시 물리적 충격에 부분 발작이 발생해 기억이 소실돼 사고 사실을 몰랐다. 뒤늦게 지인이 알려줘 차량이 파손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가 뇌전증 부분 발작으로 사고 자체를 인식 못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모닝 차량을 들이받고 몇초간 서행하다 평온하게 주행하며 현장을 이탈해 도주하는 운전자로 보기에는 이례적인 행태를 보인 점을 증거로 채택했다.
또 모닝 차량 운전자가 사고를 당한 후 앞으로 빠르게 밀리자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연석과 충돌 후 전복해 A 씨의 시야에서 사라진 점도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 봤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A씨는 모닝 차량을 들이받고 몇초간 서행하다 평온히 주행했고, 신호에 따라 그대로 직진해 지인을 만났다. 재판장은 “A씨가 특별히 서둘러 과속하는 등 이상 운전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 사고 발생을 인식하고 달아나는 운전자의 행태로는 이례적이라고 보인다”고 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A 씨의 지인도 “사고 직후 만난 A씨 차량이 심하게 찌그러진 것을 발견하고 말해줬더니, 피고인이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도주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A씨가 최초 전방 주시의무 위반으로 사고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특례법상 이 부분은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 기각 결정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