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기습으로 본토 일부를 빼앗기는 위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해설기사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위기 앞에 얼어붙는 경향이 있다며 호전적인 말에 걸맞게 신속하고 단호한 조처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WP는 푸틴 대통령이 이달 12일 안보회의에서 평소보다 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는 6일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주 기습 공격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주재한 세 번째 회의였다. 당시 그는 준비한 발언문을 불안하게 읽어 내려갔고, 알렉세이 스미르노프 쿠르스크 주지사 대행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 현황을 공개하자 짜증을 내며 말을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은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속 분석가 마크 갈레오티는 푸틴 대통령은 “그저 ‘문제를 해결하라’고만 하는 그의 평소 스타일대로 말했다”고 지적했다.
갈레오티는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을 제시하거나 의미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는 위기를 피해 숨는 푸틴의 고전적인 행태”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날 회의 뒤에도 위기에 대한 공개 언급 없이 통상적인 일정을 이어갔다.
이튿날인 13일에는 러시아를 방문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났고, 16일에는 정례 안보회의를 열었다.
게다가 18일부터는 1박2일의 아제르바이잔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WP는 이에 대해 그가 마치 “국내에 아무 잘못된 일이 없다는 듯” 외국으로 떠난다고 지적했다.
갈레오티는 “푸틴은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기를 기대한다”며 “잘된 일은 자신의 공로로, 잘못된 일은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우크라이나군의 이번 기습은 2022년 전쟁 발발 뒤 푸틴 대통령의 권위에 큰 타격을 안긴 네 번째 사례라고 짚었다.
우크라이나를 2022년 2월 침공한 직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정권의 심장인 키이우 점령에 실패하고 퇴각했을 때가 첫 번째로 거론된다. 두 번째는 최측근이던 바그너 용병단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세 번째는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했을 때다.
WP는 푸틴 대통령이 이런 위기에서 모두 하루가 다 지나도록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고 러시아 정부는 그 시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러시아 정치분석 싱크탱크 ‘알 퍼블리크’의 창립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푸틴은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것을 좋아하고 공개 석상에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며 “항상 같은 스타일”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잇단 위기 속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권력은 건재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스타노바야는 엘리트층을 비롯한 많은 러시아인은 억압적인 정치 체제 속에서 푸틴 대통령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힘이 없고 무력하다는 느낌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되는 위기로 푸틴의 권위가 훼손된 점은 분명하지만, 권력을 약화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쟁의 장기화 속에서 러시아 국민들의 위기감은 날로 커지는 모습이다.
지난 달 러시아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58%가 전쟁 종식을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쟁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응답은 34%로 6월에 비해 9%포인트 감소했다.
일부 친정부 성향의 러시아 평론가들도 우려를 드러냈다.
전쟁 분석가 카렌 샤흐나자로프는 러시아 국영방송 로시야1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실수가 게속되면 우리는 패배할 수 있다”며 러시아의 패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등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