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어른인데 뭘”…발의된 법안 10건 모두 폐기

단서를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흐르는 성인 실종 사례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관심에서 사라질 때가 많다. 2022년 여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가양역 20대 여성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종자였던 20대 여성 김모 씨의 가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제보를 요청하며 관심을 모았는데, 며칠 뒤 유서로 보이는 문서가 발견되며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 뒤로 800일 가까이 지났다. 여전히 김씨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실종을 담당했던 경찰 수사관들은 그 사이 모두 인사이동했다. 인계받은 담당 경찰은 6개월에 한 번, 그의 생활반응을 확인해 실종자 시스템에 기록한다. 김씨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가 있는지 병원 진료 기록은 없는지 따위다. 가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걸었던 제보번호를 진작 없앴다.

2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어른들도 다양한 이유로 사라지지만, 대개 다시 연락이 닿거나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개중에는 영영 찾지 못하는 ‘위험한 실종’도 있다.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범죄에 연루돼 험한 일을 당하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랜 기간 생사 파악이 안 되는 경우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법이나 제도는 이런 위험한 실종을 신속하게 걸러내고 적절히 초기 대응할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사건이 장기화될수록 경찰 수사는 더 느슨해지고, 세간의 관심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성인 실종’에 무관심한 법=경찰은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에 근거해 실종수사 실무를 진행한다. 이 법이 말하는 ‘실종아동등’은 만 18세 미만 아동·지적 자폐성 정신장애인·치매 환자를 포괄하는 단어다. 이 법은 아동·청소년과 장애인 등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초기에 위치추적, 통신기록, 폐쇄회로(CC)TV 영상 같은 자료를 신속하고 강제적으로 확보해 수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반면 만 18세를 넘긴 성인의 실종은 실종아동법을 포함해 그 어떤 법률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경찰은 ‘실종아동등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경찰청 예규 제588호)’를 근거로 성인 실종자를 ‘가출인’으로 분류하고 실무를 수행한다. 해당 규칙에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은 범죄와 관련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제3장)’고만 규정돼 있다. 자살이나 범죄 연루 가능성이 분명치 않다면, 수사를 즉각적으로 벌일 순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성인 가운데 사라진 뒤에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사라진 성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퍼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행법으론 성인 실종 수사를 강제할 근거가 전혀 없다”며 “실종 초기에 범죄 혐의가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수사 이전의 단계로서 순수하게 사람을 신속하게 발견하기 위한 (법적) 근거는 필요하다는 점엔 경찰도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런 공감대 속에서 국회도 입법을 통해 성인 실종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지난 18~21대 국회에서는 성인 실종을 다룬 10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크게 방향은 2가지였다. 실종을 다루는 기존 법인인 실종아동법을 개정해 성인실종 사건을 적극 대응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과 아예 실종된 성인만을 다루는 별도 법안을 제정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들 발의안은 쟁점에 대한 이견에 대해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채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되고는 했다. 국회 관계자는 “성인의 경우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는 범위에서 법이 설계돼야 하는데 ‘성인 실종’이란 개념으로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의 부작용 등에서 관련 기관들의 견해가 엇갈렸다”고 말했다.

이번 22대 국회 들어서도 다시 성인 실종 관련 발의가 나오고 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실종아동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실종의 범주를 실종된 성인까지 확대하고 실종자에 대한 신속한 발견을 위해 유전자(DNA) 검사와 정보시스템 입력 대상에 성인도 포함하는 등의 개정 사항을 담았다.

안 의원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나 법 공백으로 실종된 성인에 대한 추적과 파악이 어려운 상태”라며 “성인 실종자에 대한 법안이 진지하게 논의돼 실종자 가족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외, ‘성인 실종’ 어떻게 다루나=지난해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김지연 씨가 발표한 ‘성인실종자를 포함한 통합실종자법 제정 방안’ 논문을 보면 해외 주요국도 성인 실종을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다루고 있다. 각국은 법·제도 측면에서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한국의 법과 행정에서 실종자를 분류·대응하는 체계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기준을 운영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호주의 사법체계는 실종을 ▷비자발적 실종 ▷행방불명 또는 방랑 ▷자발적 실종 ▷사고에 의한 실종 등으로 세밀하게 범주화했다. 경찰을 비롯한 유관기관은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이 범주를 확인한 뒤 실종자의 상태를 저·중·고위험으로 다시 판정해 수준별로 적절한 대응을 펼친다.

일본의 법령도 실종자를 아동·성인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실종자 위험성 기준에 따라, ‘특별실종자’라는 개념을 두어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신속한 수색과 수사를 벌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선 탐정(민간조사원)이 합법적으로 의뢰를 받아 실종자 조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실종에 관해서는 19세 미만이니 이상이니 나이를 따질 이유가 전혀 없다”며 “왜 실종이 일어났는가 범죄 여부는 없는지를 진단하는 체계를 갖추고 그 기준에 따라 실종 업무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규·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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