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길은 꾸미기? ‘별다꾸’ 지갑 열고 ‘디지털문구’ 뜬다 [문구점이 사라진다]

스티커를 이용해 꾸민 사진.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전새날·김희량 기자] #. 취업 준비생 김연서(26) 씨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포카(포토 카드)’를 꾸미기 시작하며 스티커 수집에 입문했다.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포카를 꾸미는 모임도 갖는다. 연예인 포카로 시작한 ‘꾸미기’는 다이어리 꾸미기로 이어졌다. 지금은 스티커를 모으는 것 자체가 취미가 됐다. 김 씨는 “신상 제품이나 작가 트렌드를 비롯해 스티커 가게들이 어디에 모여있는 지도 줄줄 꿰고 있다”며 “요새는 다이소에도 좋은 제품이 많아져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꾸미기 문화가 유행하면서 침체됐던 문구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옷, 신발, 가방 등 패션 제품부터 텀블러, 헤드폰 등 각종 생활용품까지 꾸미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별다꾸(별걸 다 꾸민다)’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판매되는 문구 제품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꾸미기용’ 문구 제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이 주요 상권에 속속 생기고 있다. 명동·홍대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상권에서는 즉석에서 문구류를 구매해 물품을 꾸밀 수 있는 체험형 매장도 인기다.

꾸미기 매장이 늘면서 문구 디자이너들도 판매처를 확대하고 있다. 예전처럼 규모는 작아졌지만, 문구를 다루는 소형 소품숍부터 디자인숍까지 다양한 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확보했다. 문구 디자이너들도 위축된 시장 속에서 납품처를 찾으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성수·연남 등에서는 신진 문구 디자이너의 제품을 선보이는 팝업 형태의 매장까지 등장했다.

서울시 중구 명동의 한 문구점. 원하는 와펜을 조합해 물건을 즉석에서 꾸밀 수 있다. 김희량 기자
문구점에서 와펜을 구매해 꾸민 키 체인. [독자 제공]

과거와 달리 ‘꾸미기 문화’가 대중화하면서 함께 즐기는 취미로도 부상하고 있다. 직장인 현모(27) 씨는 “친구들과 꾸미기 위한 문구들을 구매하고, 카페나 집에 가서 함께 꾸미는 게 취미”라며 “꾸민 물건은 기존보다 더 귀엽기도 하고, 나만의 특별한 아이템을 얻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태블릿PC 접근과 사용에 익숙한 MZ세대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문구 시장을 이끄는 모습도 관찰된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로 주로 다이어리 애플리케이션에서 스티커, 포스트잇, 색연필 등 디지털 문구를 구매해 꾸미는 방식을 활용한다.

실제 국내 태블릿PC 보유 가정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은 좋아지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간한 ‘2023년 한국미디어패널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태블릿PC 보유율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33.4%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디지털 문구 콘텐츠 플랫폼 ‘위버딩’을 운영하는 누트컴퍼니가 발표한 ‘2023 디지털 문구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주문 데이터에서 20대가 55%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30대(29%)와 10대(8%), 40대(6%)가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이 판매된 콘텐츠는 전자 다이어리 등을 꾸밀 수 있는 ‘스티커’다. 전체 주문량의 61%를 차지한다. 다이어리 및 플래너(21%), 노트(15%), 모바일 콘텐츠(1%)가 뒤를 이었다.

문구 제품을 활용해 꾸민 물건들. [독자 제공]

위버딩은 노트 필기나 다이어리 작성, 드로잉 등을 위한 서식부터 스티커 이미지, 브러쉬 파일 등 다양한 디지털 문구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문방구’다. 누트컴퍼니는 태블릿PC를 기록 및 학습 도구로 이용하는 MZ세대가 빠르게 늘면서 디지털 문구 콘텐츠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김정연(21) 씨는 “예전에는 다이어리를 손으로 쓰다가 이제는 아이패드(태블릿PC)를 이용해 일기를 쓴다”며 “종이는 한번 쓰면 수정하기가 어려운데 패드는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며 꾸밀 수 있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꾸미기 문화가 적은 소비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존 제품을 활용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유행이 지속되고 있다”며 “물가가 오르다 보니 큰 돈을 들이기보다 꾸밈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 소비층이 성인으로 확대되면서 문구 시장의 가격 진입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문구 시장이 많이 죽은 상황에서 꾸미기 문화가 시장을 부흥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도 “지금처럼 저가의 다양한 문구 제품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면 바람직하겠지만, 소비력이 높은 성인을 노린 고가의 제품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의 한 문구점. 김희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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