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R의 공포’가 한 달 만에 다시 글로벌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NYSE) 3대 지수 모두 큰 폭으로 하락하며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 내 한 거래인의 모습 [로이터] |
미국발(發) ‘R(Recession·침체)의 공포’가 약 한 달 만에 다시 글로벌 증시를 짓누르는 분위기다. 인공지능(AI) 랠리 대장주로 꼽히는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만에 10% 가까이 폭락하는 등 반도체주(株)가 급락세를 보인 가운데, 미국 뉴욕증시 주요 지표들이 일제히 가파른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서다. 하방 압력에 눌린 국내 증시에선 8월 초 기록했던 급락장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지는 분위기다.
▶“침체 공포 너무 빨리 잊었다는 사실 상기”=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74.69포인트(2.80%) 내린 2589.94에 개장했다. 장 시작과 동시에 2600 선이 붕괴한 것이다. 코스닥 지수 역시 21.78포인트(2.86%) 내린 738.59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날 국내 증시의 급락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미 뉴욕증시 주요 지수와 빅테크(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주요 종목들의 급격한 하락세다.
3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1.51% 내렸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2.12%, 3.26% 급락했다. 미 경제지표들이 경기침체의 우려를 다시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2로 시장 예상치(47.5)를 하회했으며, S&P글로벌이 발표한 8월 제조업 PMI 역시 47.9를 기록해 전망치(48.0)를 밑돌았다.
픽테트 자산관리사 수석 전략가 아룬 사이는 “오늘 시장은 우리가 경제 침체 공포를 너무 금세 잊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평했다.
▶하루 9.53% 폭락한 엔비디아…AI 거품론 재부상?=국내 증시의 하락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AI 랠리 대표 섹터로 꼽히는 반도체주의 약세가 꼽힌다.
3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9.53% 폭락한 108.0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로써 시총 규모도 2조6490억달러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장 종료 후 진행 중인 시간 외 거래에서도 엔비디아 주가는 2%대 하락세를 보이며 주당 105달러 선까지 후퇴한 상황이다.
미 증시 대표 반도체 지수인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이날 7.75%나 급락한 4759.00을 기록했다. 이날 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30개 전종목이 하락세를 기록했다. TSMC(-6.53%), 브로드컴(-6.16%), ASML(-6.47%), AMD(-7.82%), 텍사스인스트루먼트(-5.84%), 퀄컴(-6.88%),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7.04%), 마이크론(-7.96%), 인텔(-8.80%) 등 주요 반도체주의 하락세도 뚜렷했다.
시장 일부에서는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계속될 수 있을 지와 이와 같은 투자가 충분한 과실로 이어질 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블랙록의 전략가들은 이날 보고서에서 “최근 연구 결과는 AI 자체 매출이 결국 이 같은 자본 지출의 물결을 정당화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개별 기업의 AI 투자를 평가할 때 투자자들은 대차대조표와 자본을 최선으로 활용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데이터 과민場”…美 경제 지수에 코스피 향방 갈린다=국내 증시도 미국 경기 침체 공포에 급락한 지난달 ‘검은 금요일(8월 2일)’, ‘검은 월요일(8월 5일)’과 같은 폭락장이 재현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산재한 상태다. 앞서 지난달 5일 뉴욕증시가 제조업 지표 부진에 고용지표 부진까지 더해지면서 급락하자 코스피는 8.77%, 코스닥은 11.30% 급락한 바 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가 한 달 전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지며 일제히 하락한 가운데 국내 증시도 달러/원 환율 상승, 외국인 수급 악화 및 주도주 약세 등에 차익실현이 급증할 것”이라면서 “추격매수(바이더딥, Buy the dip)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고용지표 대기 경계감과 엔화 강세 재개, 미국 기술주 급락 영향 등에 국내도 매물 소화가 불가피하다”며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내 시총 1·2위를 기록 중인 양대 반도체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가 엔비디아의 급락세에 충격을 받고 급격히 하락 중이란 점도 지수 전반적으론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3.72%(2700원) 하락한 6만9800원에 개장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장중 6만원 대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11월 9일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SK하이닉스 주가도 전날 종가보다 9.15%(1만5400원) 폭락한 15만2900원으로 장을 시작했다.
향후 국내 증시가 추가로 하락세를 기록할 지, 반등세로 곧장 돌아설 지 여부는 미국에서 연이어 나올 각종 지표들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블루칩 트렌드 리포트의 수석 기술 전략가 래리 텐타렐리는 “지금 시장은 들어오는 모든 데이터에 매우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데이터 의존성이 매우 높은 시장이 돼있다”고 말했다.
4일(현지시간)에는 미국 노동부가 7월 구인·이직 보고서(JOLTs)를 내놓는다. 이어 오는 5일(현지시간)에는 8월 민간 고용 보고서와 서비스업 PMI, 오는 6일(현지시간)에는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 지표와 실업률이 각각 발표할 예정이어서 시장 참가자들의 관심이 집중돼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일단 오늘 국내 증시는 하방 압력을 받으며 출발하겠지만, 이번주 목요일 ISM 서비스업 PMI와 주간 실업수당청구건수, 금요일 실업률 이벤트를 치르는 과정에서 상황 반전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신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