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강한 공군 열정…우주공군 최고 조력자로 뜨다

박인호 전 공군참모총장이 공군 제19전투비행단장 재직 당시 KF-16C 고별비행 조종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박인호(59) 전 공군참모총장은 40여년 입었던 공군 제복을 벗었지만 여전한 현역이다.

박 전 총장은 1983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87년 공사 35기 졸업과 함께 임관 뒤 제39대 공군참모총장을 끝으로 2022년 전역할 때까지 40여년간 대한민국 영공 방어 최일선에 있었다.

그는 예편 뒤 국방우주분야 학술활동과 정책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 한국국방우주학회 회장과 법무법인 대륙아주에서 항공·우주·방산 분야 고문, 그리고 한경대 석좌교수를 맡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공군 제19전투비행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장, 핵·WMD대응센터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북정책관, 공군사관학교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공군 뿐 아니라 군내 대표적인 합동작전·국방정책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박 전 총장은 지난달 26일 헤럴드스퀘어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현역시절 언급하기 조심스러웠던 사안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밝혔다.

▶4500여 시간 동안 F-5·F-4·F-16·KF-16 등 조종=박 전 총장은 F-5 프리덤 파이터와 F-4 팬텀, F-16, 그리고 F-16을 국내 면허생산한 KF-16 등을 총 4500여 시간 조종한 베테랑 조종사이기도 하다. 비슷한 연배로 미국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찰스 브라운 미 합동참모의장의 비행시간이 3000여 시간이다.

박 전 총장의 비행시간이 남다른 기록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비행이나 조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공사 문을 두드린 것부터가 우연에서 시작됐다. 그는 “공사가 뭔지도 잘 모르고 조종사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가 조종사가 꿈이라며 원서를 들고 와 같이 시험보자고 했다”며 “정작 친구는 떨어졌는데 제가 합격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관학교에 들어가니 공사에 온 동기가 뭐냐고 묻는데 원래 꿈이 과학자나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곤란했었다”며 “그래서 급조해 만든 답변이 ‘하늘을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왔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고 돌이켜 말했다.

박 전 총장은 공사 입학 뒤 조종사가 되기 위해 초등비행훈련, 중등비행훈련, 고등비행훈련, 전환 및 작전가능훈련(CRT)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로소 비행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는 “비행 준비는 굉장히 괴로웠지만 하늘로 올라가면 그렇게 재미있었다”며 “비행하는 자체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비행 스케줄이 그 전날 나오는데 비행 스케줄만 나오면 너무 설렜다”면서 “같은 편조끼리 모여 자료를 모으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잠들어 있는 친구(항공기)를 시동 걸어 깨우면서 ‘오늘도 우리 잘해보자’ 얘기하고 활주로를 달려 하늘로 올라가 임무를 수행한 뒤 내려와 땀을 씻고 디브리핑(임무 수행 보고)을 마무리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너무 좋았다”고 회고했다.

박 전 총장의 비행은 통상 관리자로 분류되는 비행대대장 시절은 물론 장군이 돼 비행단장을 맡았을 때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제가 생각한 대대장으로서 대대를 관리하는 방법은 조종사와 함께 매일 비행하는 것이었다”며 “비행단장으로 가서도 복좌기 후방석이 아닌 단좌기에 혼자 타 비행하면서 ‘지금 젊은 조종사와 정비사가 이런 건 이렇게 힘들겠구나’라고 느끼고 접근하려 했다”고 말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를 향한 애정도 남다르다. 그는 “항상 블랙이글스가 ‘하늘의 BTS(방탄소년단)’라고 얘기할 만큼 ‘찐팬’”이라며 “총장 때 세 번을 포함해 총 여섯 번을 같이 비행했는데 블랙이글스와 함께 그렇게 많이 비행한 장성급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개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계열인 T-50B로 구성된 블랙이글스는 고난이도 기동과 곡예비행을 선보이기 때문에 통상 고위장성급은 탑승하지 않는다.

박인호(뒷줄 가운데) 전 공군참모총장이 2021년 9월 재직시절 공군본부 우주센터를 창설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KF-21, 추가 협력 국가 찾으면 印尼 태도 바뀔 수도”=박 전 총장은 전역한 지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공군과 비행에 대한 짙은 애정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공군과 비행이 화제에 오를라치면 어김없이 눈을 반짝이곤 했다.

인터뷰 현장에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부터 진한 공군사랑이 느껴졌다.

지인이 조종사 헬멧 가방을 본따 축소해 만들어준 서류가방에는 F-16 1000시간 비행 기념 패치와 F-4 팬텀을 상징하는 스푸크(유령), KF-21, 블랙이글스 마크, 그리고 자신의 콜사인 ‘19곰’과 방산업체의 키링 등이 즐비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건: 매버릭’을 보고 눈물을 흘린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영화 탑건을 처음 본 게 중위였던 1988년이었는데 해군 조종사 얘기였지만 전투기 조종사로서 나름 실감났다”며 “35년가량 지나서 탑건 매버릭을 보는데 ‘매버릭’의 라이벌 ‘아이스맨’이 대장이 돼 미 태평양함대사령관으로 나오는 걸 보면서 저 사람도 대장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나는 이제 전역하는데 ‘매버릭은 여전히 전투기를 타고 조종사들을 모아 훈련을 하고 임무를 수행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굉장히 부러웠고 더 이상 비행을 못한다는 생각과 함께 군 생활을 쭉 돌아보게 되면서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참고로 ‘매버릭’, ‘아이스맨’과 같은 박 전 총장의 현역시절 콜사인은 ‘19곰’, ‘스톰’이었다. 각각 제19전투비행단 시절 큰 풍채와 비행이나 축구를 할 때 호통을 많이 쳐 붙게 됐다고 한다.

이와 함께 박 전 총장은 한국형전투기 KF-21 보라매 사업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특히 공동개발국으로 당초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분담금을 낮춘 인도네시아와 관련 제3의 협력국가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먼저 수차례 사업타당성 조사와 사업 추진 결정, 쌍발엔진·단발엔진 논란, 미국의 핵심기술 이전 문제 등을 거론한 뒤 “KF-21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사업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 블록-Ⅰ 양산단계까지 왔는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공군의 사업 담당자의 노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항공산업 엔지니어와 과학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와 공동개발 문제와 관련해선 “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야 나중에 동남아 시장이나 남미, 유럽 등 해외시장 진출에 용이한 발판을 만들 수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지금 인도네시아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다만 “KF-21사업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가 아닌 다른 국가도 끌어들여야 한다”며 “추가로 협력할 국가를 찾을 필요가 있고 그렇게 되면 인도네시아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KF-21의 성공적 개발과 양산, 그리고 향후 수출까지 고려해 인도네시아와 협력을 지속하되 제3국과의 협력까지 포함해 보다 폭넓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과거 F-16이나 F-15, F-35처럼 당시 가장 우수한 전투기를 도입할 때와 KF-21 전력화는 여건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공군이 이미 4.5세대, 5세대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KF-21 개발 과정에서 조종사와 정비사 등 앞으로 KF-21을 운용할 소요군인 공군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장은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작전요구성능(ROC)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우리의 무기체계 도입이나 개발 절차는 국방예산의 한계 등 때문에 굉장히 까다롭다”며 “예를 들어 원하는 게 100이라고 하면 우리는 100을 갖춰야 도입하는데 너무 완벽을 추구하다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동안 더 발전된 게 나오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늘 진화적 ROC를 주장해왔는데 100을 원하면 일단 60~70이 될 때 도입해 운영하면서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라며 “이렇게 하면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보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고 개발업체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런 측면에서 KF-21을 공대공 능력을 갖추는 블록-Ⅰ과 공대지 능력까지 갖추는 블록-Ⅱ로 가는 것은 잘된 일”이라며 “KF-21사업이 끝까지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인호(오른쪽) 전 공군참모총장이 2022년 4월 미국을 방문해 미 우주군과 정책협약서를 체결하는 모습

▶‘바른 공군·강한 공군’ 강조…‘우주공군’ 큰 족적=박 전 총장은 공사 35기 선두그룹으로 공군과 국방부, 합참 요직을 거치며 일찍부터 공군참모총장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정작 총장으로 내정받은 당시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으로 공군이 안팎으로 흔들리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군이 창군 이후 쌓아온 명예와 국민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던 시기였다”며 “동료의 인권과 일상을 지키는 ‘바른 공군’을 만들기 위해 병영혁신과 군 사법체계 개혁을 하는 동시에 영공과 우주를 지키는 고유의 임무를 수행하는 ‘강한 공군’을 만들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앞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역을 해야 했다. 그는 “조금 더 했다면 ‘바른 공군, 강한 공군’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면서도 “한 사람이 10년을 한다고 해도 다 이룰 수 없는 것이고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선배들이 해온 것을 이어받았듯이 앞으로 후배가 이어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박 전 총장의 ‘우주공군’을 향한 족적은 결코 작지 않다. 재임 기간 미 우주군 참모총장, 우주사령관 등 세계 우주 지휘관과의 만남과 미 우주사령부, 우주미사일방어사령부 방문 등을 통해 한미 우주 파트너십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총장 직속 공군 우주센터 신설과 함께 우주작전전대 창설 일정을 앞당기는 데서도 그의 역할이 컸다.

지금도 공군 내에서 박 전 총장을 거론할 때 ‘우주공군’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전 총장은 김정수 전 해군참모총장, 안준석 전 지상작전사령관, 곽신웅 국민대 교수와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국방우주학회에서 우주를 향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우주항공청이 출범했는데 미 항공우주국(NASA)과 달리 특정 부처의 외청으로 민간과 국방 분야가 분리돼 있고 국방부와 협업체계 등도 아직은 세밀하게 짜이지 않은 것 같다”면서 “학회에서 국방우주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정책적으로 필요한 게 뭔지, 기술적으로 필요한 게 뭔지, 어떤 조직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조언하고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40여년을 공군의 푸른 제복과 함께 했는데 너무 영광스러운 기간이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 정말 감사하다”면서 “지금도 열심히 근무하며 하늘과 우주를 향해 열정을 불태우는 모든 장병, 군무원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고 전했다.

신대원·오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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