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총선 4위’ 공화당 소속 총리 임명…좌파 연합 “선거 도둑맞아”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마티뇽 호텔에서 열린 인도식에서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신임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우파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 총리를 임명했다. 이로써 프랑스 5공화국 역사상 네 번째 동거 정부가 탄생하게 됐다.

프랑스에서 동거 정부란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구성을 말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 성향의 르네상스당 소속이며, 바르니에 총리는 정통 우파 공화당 출신이다.

지난 6월 30일과 7월 7일(결선)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 동거 정부 탄생은 예견돼 있었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은 하원 전체 577석 중 168석을 얻어 182석을 얻은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에 의회 다수당 자리를 내줬다.

다행히 2위 자리는 지켰으나 범여권에 비판적인 NFP와 극우 국민연합(RN) 연대 세력(143석)의 의석수를 합하면 과반(289석)을 훌쩍 넘겨 자체 정부 운영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권과 2주간의 협의를 거쳐 그나마 집권 여당에 위협이 되지 않고 하원의 불신임 투표를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바르니에 총리를 선택했다. 바르니에 총리가 속한 공화당은 이번 총선에서 의회 내 4위에 그쳤다.

마크롱 대통령이 앞서 정부 구성 방향을 밝힌 대로 바르니에 총리는 범여권과 온건 좌우 진영을 통합한 연립 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연립 정부 내 바르니에 총리의 운신 폭은 좁을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동거 정부의 주도권은 마크롱 대통령이 쥘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바르니에 총리 임명 소식에 총선에서 1위를 하고도 총리 자리를 빼앗긴 NFP 소속 좌파 정당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NFP 소속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선거가 도둑맞았다”며 “총선 2차 투표는 (극우) 국민연합(RN)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는데 그 (정치적) 입장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임명됐다”고 비판했다.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도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 정점에 도달했다. 선거에서 4위를 차지한 당의 인물이 총리가 됐다”고 반발했다. 마린 통들리에 녹색당 대표는 “누구를 조롱하느냐”고 반발했다.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외교·국방을 담당하며 총리와 각료 임면권, 비상 권한 발동권, 의회 해산권 등의 권한이 있다. 총리는 정부 수반으로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정부 활동을 지휘한다. 각료 제청권, 법안 제출권, 의회 소집권 등도 행사한다.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총리에 앉힐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하원에서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어 하원 다수당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사람을 총리로 앉히는 건 불안정하다. 이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에선 야당 출신 총리를 임명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선 1958년 5공화국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총 3차례 동거 정부가 구성됐다.

첫 번째는 사회당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1986∼1988년)로, 1986년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공화당 소속의 자크 시라크 총리가 임명됐다. 두 번째 동거정부 역시 미테랑 대통령 재임 때(1993∼1995년)로, 당시 총선에서 우파가 1당을 차지해 에두아르 발라뒤르 공화당 총리가 내각을 이끌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1997∼2002년)도 1997년 총선에서 여당이 좌파 연합에 지면서 사회당 소속 리오넬 조스팽을 총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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