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다카이시 사나에 경제안보 담당상 [EPA]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가 27일 열리는 가운데,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 다카이시 사나에(63) 경제안보 담당상 등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히며 3파전 양상이다. 이들은 ‘핵 공유’나 ‘비핵 3원칙 재검토’ 등 일본 안보정책 근간을 뒤흔들 주장을 내놓으며 안보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지만 한일 관계나 한일 역사 문제는 완전히 ‘뒷전’이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세 후보 중에서 안보와 방위력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인물은 방위상을 지냈던 이시바 전 간사장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설을 제시했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집단 방위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다양한 가치관과 체제를 지닌 나라가 공존하고 있어 나토와 같은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다른 후보들로부터 나왔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미국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도 보였다.
핵 공유는 미국 핵무기를 자국 영토 내에 배치해 공동 운용하자는 의미로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 비핵 3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이시바 전 간사장은 지난 16일 토론회에서 핵 공유에 대해 “비핵 3원칙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본이 핵을 보유하거나 관리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을 공유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 노선을 추종하는 우익 여성 후보인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은 아예 비핵 3원칙 중 ‘반입하지 않는다’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핵 3원칙을 견지한다면 미국 핵우산으로 억지력을 얻는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가 언급한 아시아판 나토, 핵 공유와 비핵 3원칙 재검토 등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엄중한 안보 환경이 (발언의) 배경이지만, 실현을 둘러싸고는 정부 내에서 냉담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14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총리로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한 것은 2013년 당시 아베 전 총리가 마지막이었고, 이후에는 참배 대신 공물을 봉납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임 일본 총리가 전격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면 한국 내에서 일본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안보 문제에 대한 언급이 다른 유력 후보에 비해 적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도 일본 패전일인 지난달 15일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과 마찬가지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총리로 당선되는 경우 참배 여부에 대해 “앞으로 적절히 판단하겠다”며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부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재임 시절 거의 매년 참배했다는 점에서 참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같은 세대임을 강조하며 “전제 조건 없이 (김 위원장과) 마주하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싶다”고 발언하는 등 북일 대화에 대한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북일 대화는 일본인 납북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다.
이와 같은 안보 이슈에 비해 한일 관계나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해선 미지근한 반응이다.
후보자 모두가 한국 정부의 일제강점기 징용 배상 해법 발표 이후 개선된 한일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사례가 드물고, 향후 한일관계 불씨가 될 수 있는 역사 문제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일 만한 인물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구축한 한일관계 개선 흐름이 총재 선거 이후 크게 변하지 않겠지만,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징용 배상 해법이나 위안부 등 역사 사안에 대해서는 기존 일본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