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주요 은행 ATM 기기 모습.[연합]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각종 대출 규제가 이어지며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던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인 가운데,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 추세는 더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예금금리는 꾸준히 줄어들며 마진률의 척도로 분류되는 예대금리차는 다시 벌어지고 있다.
특히 가계대출 관리가 중요한 상황에서는 대출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만, 다시 내리기는 어렵다. 대출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고금리가 장기화되며 지금의 ‘영끌’과는 무관한 소비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과도한 이윤을 추구한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서울의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정보.[연합] |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 취급액 기준 평균 가계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8월 0.44%포인트로 전월(0.33%)과 비교해 0.11%포인트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며, 대출금리 인하를 지속했던 은행권의 예대금리차는 약 4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지난 7월부터 은행권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대출금리 인상을 본격화한 결과다. 실제 지난 6월 중 주요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 하단은 2%대까지 내려갔지만, 현재는 4%대 수준으로 올랐다. 실제 주요 시중은행들 중 올해 처음 2%대 주담대 금리를 적용했던 신한은행의 이날 기준 주담대 금리는 4.12~5.42%로 집계됐다. 두 달 만에 약 1%포인트 이상 금리를 올린 셈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ATM 모습.[연합] |
반면 예금금리는 줄어들며, 가계예대금리차 확대를 견인했다. 5대 은행의 예적금 상품 등을 포함한 저축성 수신금리는 ▷6월 3.52% ▷7월 3.43% ▷8월 3.37% 등으로 약 두 달 만에 0.15%포인트 줄었다. 아울러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안전자산 추구 현상이 가속화되며, 정기예금 잔액은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같이 대출금리 인상을 필두로 한 은행권의 가계대출 규제 정책은 일정 부분 효과를 나타냈다. 몇 달간 상승세를 기록하던 가계대출 잔액 증가세가 하락세로 전환한 것이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30조9671억원으로 지난 8월 말(725조3642억원)과 비교해 5조6029억원 늘었다. 8월 증가폭(9조6259억원)과 비교하면 4조원가량 줄어든 수치다.
서울의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정보.[연합] |
문제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 행렬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거다. 국민은행은 지난 4일부터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등 금리를 최대 0.25%포인트 인상했다. 신한은행도 5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최대 0.2%포인트, 전세대출 금리는 최대 0.45%포인트 올렸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이달부터 가계대출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지난 7월과 8월에 걸쳐 총 20회가 넘게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했던 은행권은 9월부터 유주택자 대출 제한 등 여타 가계대출 규제 정책을 내세웠다. 금리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어지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나서 ‘손쉬운 금리 인상’ 정책을 지적한 데 따라서다. 하지만 이후 되레 시장 왜곡 비판이 나오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개별 금융사의 상황에 맞게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대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대출금리 인상 가능성을 다시 열어준 셈이다.
무엇보다 현재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고 있는 ‘영끌족’ 외 기존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덩달아 가중되며, 소비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기존 차주들을 포함한 잔액 기준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8월 말 3.75%로 2015년 1월(3.78%)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김병환(오른쪽) 금융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특히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9년 하반기 전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23조6918억원가량 늘어난 바 있다. 2019년 7월부터 기준금리 인하 추세가 본격화되며, 시장금리에 하방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고정형 금리로 대출받은 이들은 현재 대거 금리 갱신을 앞두고 있다. 당시 최저 2%대 주담대가 적용된 것을 고려하면, 순식간에 부담해야 하는 이자 수준이 최대 2배가량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가계대출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한 번 올린 대출금리를 인하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다시금 ‘대출 시그널’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줄어든다고 해도, 대출금리를 낮출 경우 다시 가계대출을 부추긴 주범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선뜻 은행들이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다고 해도, 적어도 향후 몇 달간은 지금과 같은 금리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예대금리차를 벌린 은행들의 수익성이 높아지며, 이자이익을 필두로 한 ‘호실적’을 전망하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4조788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4조4423억원)와 비교해 7.7%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