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대 ‘수도권 첨단산단’ 청사진도 흔들린다 [멈춰 선 국가전력망]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 전경 [용인시 제공]

“3~4개월 동안 8개 공정 라인에 들어가면 수 개월, 수 천번의 복잡한 시설을 거쳐 가지고 반도체가 되는 겁니다. 전기가 ‘0.001초’만 끊겨도 8개 공정 안에 들어가 있는 제품은 폐기 처분해야 하는 불량품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반도체 공장에 전력 공급이 중요한 겁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9일 ‘왜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함께 이야기하는가’를 주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 강연에서 전력망 확충의 중요성을 이 같은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종류에 따라 길게는 160일 이상 걸리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찰나’의 전력 부족이 가져올 천문학적 손실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전력 부족이 시민 불편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는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 짙게 감지된다. 특히 2022년 1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의 국회 통과 이후 지난해부터 발표된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청사진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가 약속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총 12곳, 투자 규모는 총 650조3000억원이다. 반도체와 관련해 2042년, 2026년을 각각 목표로 562조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용인·평택)’와 4조7000억원 규모의 ‘구미 반도체 특화단지’를 지정했다. 천안·아산에는 2026년까지 17조2000억원 규모의 디스플레이 생태계 조성을 예고했다.

청주와 포항, 새만금, 울산에는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총 30조원 규모의 이차전지 특화단지 4곳을 설립할 예정이다. 인천과 경기 시흥에는 2035년까지 약 25조7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1위 ‘바이오 메가 클러스터’ 설립을 추진한다. 이 밖에 대전에는 2037년까지 약 6조6000억원 규모의 신약 연구·개발(R&D) 오픈 이노베이션 거점을 신설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런 수도권 특화단지들의 ‘정상 가동’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특화단지 조성으로 전국 최대 전력 평균인 72.5GW(2023년 기준)의 20%에 해당하는 15GW 이상의 신규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곳에서만 10GW가 넘는 신규 수요 발생을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서울의 전력자급률은 10%, 경기는 62% 수준에 그쳤다. 전력 발전량을 소비량으로 나눈 전력자급률은 100% 아래로 떨어질수록 생산 대비 사용한 전력이 많다는 의미다. 석탄·화력·원자력발전소 등이 있어 자급이 가능한 경북(216%), 충남(214%), 강원(213%) 등과 비교하면 이미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비수도권에서 사용되지 않은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 올 송변전망 확충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로부터 제출받은 ‘제10차 송변전설비계획(2022~2036년) 대비 추진현황’ 자료에 따르면 총 307개 사업 가운데 준공이 완료된 사업은 19건(6%), 착공 단계 사업은 27건(9%)에 그쳤다. 나머지 261건(85%)은 입지 선정 또는 준비 단계로 사실상 착수 이전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 의원은 지난달 14일 한전 등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85%가 아직도 사실상 아무것도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보통 한전이 핵심 전력망을 놓는데 13년 정도 소요된다”며 “그렇다면 적어도 전체 사업이 입지단계에 있어야 하고, 절반 이상은 착공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김진·양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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