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땅에 살고 있는 세월이 내년이면 어느덧 30년이다.환갑이 엊그제 같은데 칠순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인생의 절반씩을 한국과 미국에서 나눠 살다보니 태어나고 자란 고국에서 보다 많이 사는 게 어떨까 싶어진다.
왜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지 딱히 꼬집어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고향쪽에 둔다는 여우의수구초심 (首丘初心)이 본능처럼 꿈틀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동포사회에서 교류하는 비슷한 또래들이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은퇴를 한 사람보다 현업에서 떠나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일 수록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쪽이 더 많은 듯하다.
날씨가 좋고 먹거리가 풍요로워지는 봄 가을이면 유난히 한국을 방문하는 동포들이 많아진다. 그들 가운데 5060세대는 십중팔구 한국에서 살기 위한 사전답사같은 행보를 숨기지 않는다. 아파트나 오피스텔같은 주거공간을 찾아보는 건 기본이다. 한국의 각 지자체마다 시행하고 있는 해외동포 이주 프로그램을 체험해보거나 시니어를 위해 조성한 커뮤니티나 시설을 살펴보고 왔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역이민(逆移民)’은 50대와 60대 동포들에게 적지 않은 무게감으로 거의 일상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한국의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한국에 거소신고를 하고 살고 있는 미국 국적동포는 올해 9월 기준 4만9천796명이다.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4만5천 655명에 비해 9%가량 늘었다. 13년전인 2010년의 3만5천501명에 비하면 무려 40%나 많아졌다.
지난 10월 미국의 유력 매체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LA) 타임즈는 서울특파원발로 장문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까닭(Why these Korean Americans are leaving the U.S. to return to their homeland)’이라는 제목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한국인들의 한국 국적 회복 사례가 기록적으로 많아진 가운데 미주지역 한인의 국적회복사례가 4천203건으로 전체 국적회복사례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아울러 지난해 기준으로 9천379명의 미주 한인들이 일종의 은퇴연금인 미국의 소셜시큐리티를 한국에서 수령했다는 사실도 전했다.이 숫자는 10년전인 2013년의 3천709명과 비교하면 세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소셜시큐리티 연금은 납부한 세금을 기준으로 책정돼 60대 나이부터 수급신청을 할 수 있다. 사회보장국(SSA·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의 자료를 보면 65세에 평균적으로 받는 금액이 2023년 6월 기준으로 한달에 1인당 1천525달러에 달한다.
미국사회에서 30년 이상 성실하게 납세한 한인들은 은퇴한 후 한달에 2천500달러 이상 받는 이들이 많다. 한국에서 노년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미국의 은퇴연금은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LA타임즈는 미주 한인들이 역이민하는 이유로 미국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떠나온 고국에 대한 향수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녀가 성장해 독립하고, 본인도 은퇴해 시간이 많아지면서 공허한 마음이 더 커졌다는 역이민한 한인동포의 말을 곁들였다.
나이들어 운전이 힘들어지면,고립감이 심해지는데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이 잘 돼 있어 편리하고 무엇보다 노년에 가장 중요한 건강과 관련, 의료보험이 미국에 비해 더 낫다는 실리적인 면이 역이민 생활에 중요한 변수라고도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보험이 있어도 의사를 만나 진료받고 치료하기가 시간과 과정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즉각적으로 의사를 만날 수 있는데다 의료수준과 병원시설은 “거의 환상적”이어서 역이민을 결정하는 데 더이상 망설이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문제는 역이민한 동포들에 대한 한국내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데 있다. 인천공항에 들어설 때부터 외국여권을 내미는 동포를 한번 더 ‘째려보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의 불편한 눈길은 그나마 접어둘 수 있는 해프닝이다. 합법적인 경제할동을 위해 거소신고를 하고 규정에 따라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됐는데도 ‘세금도 안낸 주제에 혜택만 챙긴다’는 비아냥을 드물지 않게 경험한다는 동포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내 나라가 가난하고 어려울 때 저 혼자 잘 살겠다고 남의 나라로 도망가더니 이제 고국이 살만해졌다니 돌아오냐”는 말은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동창회 술자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취중진담의 ‘비수(匕首)’가 아닐 수 없다. 생활환경이 보다 나은 곳을 찾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그같은 손가락질이야 무시하면 그만일게다.
다만 180여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동포 수가 750만명에 달하고 있음이 증거하듯 유대인 못지 않은 디아스포라(Diaspora)를 한국인의 유전자 중 하나라고 인정한다면 이민이건, 역이민이건 그 자체가 비난거리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동포사회에서 각급학교 동창회마다 결속을 위해 내거는 구호가 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바꾼다는 말이다. 사는 곳이 어디든 간에 학적은 못 바꿔도 국적은 여러번 바꿀 수 있다고 돌려 말하면 수구초심의 발로이건, 실리적인 이해타산 때문이건 역이민하는 해외동포를 너그러운 눈길로 품어줄 수 있을까.